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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우리 어떻게 살아갈지?<칼럼>아침을 열며

   

 

 

 

 

이때쯤이면 거두어들인 곡식더미에 마냥 흡족하며 멀리 그리고 가까운 이웃을 챙기던 우리 고향사람들의 마음이고 농부들의 사는 모습이 아니던가.

그때눈 1인당 국민소득(GDP)이 80불도 안되고 수출은 커녕 나라에 외환보유고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국민소득이 1만5천불에다 외환보유고가 세계에서 네번째로 많은 나라다.

수출도 사상 최고로 2천억불이나 되어 수출왕국(세계 10위권)으로 수치계산상 부자나라가 됐다.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세상이 되어 버렸다.

요 몇년 전에는 15살 중학생이 세상에 혼자밖에 없는 홀어머니가 죽자 자기 방에다 6개월을 방치해 버린 일이 있어 우리를 슬프게 했다.

아홉살 소년이 혼자 비닐하우스에서 살다가 자기가 보살피던 굶은 개에게 물려 죽었다.

허리 부러지게 농사짓던 농부가 농사 잘 지으려고 사온 농약을 마시고 자살했다. 당 앞 뜰에서 전쟁하듯 피터지고 죽고 난리가 났다.

그곳은 다름아닌 국민의 삶의 질을 걱정하고 지켜준다는 국민대표자들이 일하는 집앞이 아닌가.

나라 금고에 쌓여있는 돈은 생땅 파헤쳐 도로 만들고 높은 시멘트집 짓는데 쓰노라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 농민들에겐 최소한의 안정장치조차 마련 못한 나라다.

정확히 말해서 우리 국민들의 생각, 국민의식이 이웃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몽땅 매말라 버린 지경에 와 있기 때문이다.

경제제일주의, 국민소득신앙 신도들이 돼버린 그 국민 앞에서 노무현정부도 속수무책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국민의 의식이 바뀌지 않고서는 우리를 슬프게한 것들은 연속될 것이다.

서구 싸르트르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경구를 들고 나와 자기각성의 길을 안내했다.

지금 우리 농민 그리고 가난한 이들이 열등의식, 패배의식, 공격의식 그리고 좌절의 늪에서 화풀이를 찾고 있다.

분통이 터지고 있는 농민들의 아우성에 귀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농민, 농촌, 농업이 쓰러지면 우리 밥상이 무너지고 그 밥상이 망가지면 온생명, 국민의 건강이 무너지게 되기 때문이다.
국가 경쟁력은 곧 국민의 건강력이기 때문이다.

돈, 국민소득, 수출도 좋지만 생명이 무너지면 지구덩어리를 차지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천오백만불어치 마늘 수입을 막으면 핸드폰 오억불어치를 못팔게 되니 경제수치로 따지면 핸드폰이 효자다.

그러나 마을농사 포기하면 흥부네집 박씨 물어다 주었던 제비도 빨간 고추잠자리도 함께 멸종시키게 된다고 널리 보아야 한다.

핸드폰 팔아 벤츠자동차 사서 산천경개 구경간다 하지만 빨간 고추잠자리도 없어진 을씨년스러운 그곳에 행복이 함께 자리해 줄 수 없다.

돈 돈, 개발 개발 하던중에 어느새 생명환경 위기의 강물이 우리앞에 도도히 흐르게 된 것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왜 사는 것인지? 앞으로 우리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생각하는 사람이고 백성이어야 한다.

우리 앞에 흐르는 저 위기의 강물은 깨달음 없이는 건널 수 없는 강이기 때문이다.

농민들의 아우성에 귀 기울일때 우리들 생명의 밥상은 무너지지 않게 된다.

그래도 바보같은 농민이 있기에 서울대 황우석교수 같은 스타가 매스컴을 타고 있는지 모른다.

이땅에 마늘이 사라지고 나서 핸드푼을 언제까지 믿고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이 땅은 오늘 우리만의 것이 아닌 다음세대의 것이기도 하기에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교차로저널  kocus@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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