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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우리는 미리 각오해야 할 것이 있는데 언제든 내가 바라지 않는 어려운 시련이 찾아오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을 리 없고 건강도 이상이 없어서 승승장구하는 사람, 저 사람은 가난이나 고생, 실패와는 무관할 것 같은 사람에게도 꼭 한두 번씩은 그 사람을 밑바닥으로 내동댕이쳐 버린 것을 보아왔습니다. 날마다 사업이 번창해서 아주 잘나가고 남이 알아주는 그 도시에 부자였던 사람도 어느 날 그 부인은 외판원을 하고 있는 것을 보기도 했습니다.
단맛만 있는 게 아니고 쓴맛도 있습니다. 쓴맛을 모르면 단맛의 그 달콤함을 알 수도 없고 고마워하지 못합니다. 내가 고생하지 못하고 깨어지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남을 무시하게 되고 목에 힘이 가고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의 불편과 심정을 알 까닭이 없고 그들을 피하게 되고 귀찮게 여겨서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특별한 사람으로 그들은 타고난 팔자로 여기고 관심도 없을 만큼 사람이 달라지게 되는데 그래서 부자가 되면 겸손해 지기가 어렵다고 했는지 모릅니다.
돈이 눈을 가지고 있으니 무슨 정이 있고 눈물이 있겠습니까. 어려운 이들의 신음소리가 귀에 들리고 보일 까닭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벌까만을 궁리하고 그것이 낙이 되고 맙니다.
어느 날 어려움과는 전혀 무관할 것 같은 그 사람에게도 시련은 어김없이 찾아오는데 준비하지 않고 있다가는 돈만 잃은 게 아니고 건강까지도 잃을 수 있을 만큼 큰 충격을 받고 그 아끼던 것을 다 날려 버리고 맙니다.
저는 지난주에도 저를 찾아온 한 사람을 만났는데 어마어마한 건물을 짓고 수천평 땅위에 대단한 사업을 하는 사람이 무너질 까닭이 없고 어려움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생각지도 않은 일을 당하고 나니까 그렇게 만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전화통화도 안 되는 사람이 스스로 찾아와 도움을 청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시련은 나를 겸손케 하고 감사를 알게 하며 사람을 사람답게 합니다. 잘못 생각하고 이기적인 사람을, 남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사람을 눈에서 껍질을 벗겨서 옆 사람을 보게 하고 교만을 떨었던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알게 합니다.
낮아질 수 없는 사람을 낮추게 하는 것이 시련의 역할입니다. 남이 내 눈에 안 들어오고, 세상에 나만 보이고, 나만 위하고, 내 입에 감사가 사라지며 내 욕심이 늘어갈 때면 그 사람은 지금 혹독한 시련을 초청하고 있는 중임에 틀림없습니다.
교차로저널 kocus@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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