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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고등학생 4명중 1명이 담배를 피운다고 하는 것이나 오빠부대에 속해 “오빠야”하고 불러볼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시기의 그런 욕구 때문이다. 이 시기에는 밖으로 나돌게 되고 금방 헤어진 친구에게 다시 전화하고 채팅하거나 부모의 뜻에 어긋나는 일을 하기도 한다.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뛸 수 있는 게 청소년들의 정서이다.
외형상 지금은 예전에 비해 사는 것에 여유가 있다. 2002년 기준 14세 남학생의 키는 1970년보다 15.2㎝,여학생은 8.3㎝ 더 커졌다. 체중 또한 남학생은 15.7㎏,여학생은 9.5㎏이 늘어났다. 예전보다 오늘의 청소년들이 여유를 가지고 산다고 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청소년들이 겪는 사회적 강요는 전보다 더 강하다.
예전과 같은 예절이나 조심성은 박물관에나 가 있어야 할 것으로 안다. 옛 사람들이 볼 때 지금의 청소년들은 아주 버릇없고 장래성이 없는 아이들로 보일 수 있다. 사회적인 강요 즉,텔레비전이나 인터넷 게임,저질스러운 음악과 같은 것이 주는 영향은 아주 크다. 그런데도 사회는 그것에 대해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아이의 잘못을 주위환경이나 친구탓으로 돌린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부모가 아이를 어떻게 대했는지가 더 중요하다. 문제아 뒤에는 거의 예외없이 문제부모가 있다. 그러므로 부모는 그 아이에게 이 시대를 사는 바른 삶의 지혜를 가르쳐주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너무 빠른 변화를 겪으면서 살고 있다. 가정이나 사회는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청소년들을 이해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들로 하여금 선과 악을 구별케 하여 죄를 죄로 여길 수 있도록 이끌어줘야 한다. 죄는 사람의 기능을 퇴화시킨다. 그러므로 죄를 가지고는 아름답게 성장할 수 없다. 부모는 어떻게 할 때 자신이 존경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고 자신의 삶의 일부가 자녀들에게도 속해 있다는 점을 깨달아 먼저 본을 보이는 삶을 살아야 한다.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고 인정한다고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특히 청소년기에 중요한 것은 대화이다. 부모는 시간이 허락하는 한 자주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가볍게 자녀와 대화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을 확실하게 해주어야 한다. “내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을 알겠지”하는 정도로는 안 된다. 확실하게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주어야 한다. 가능하면 1주일에 한번쯤은 함께 운동을 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다. 이때 부모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아이 중심으로 모든 것이 이뤄져야 한다
우리는 청소년들의 잘못된 행위만을 지적할 때가 있다. 이제는 그렇게 하지 말자. 그들에게는 그들다운 세계와 이해가 필요하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욕구가 잘못 쓰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사회와 가정의 사명이다. 청소년기는 자기가 자기를 조절하기 힘든 시기이다. 이 시기를 슬기롭게 넘기기 위해서는 그들을 이해하고 사랑하면서 선과 죄의 구분을 확실하게 하도록 도와야 한다. 청소년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사는 사회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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