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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8일(음력 8월 15일) 추석. 추석 때면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는다. 동물도 그런 면이 있다. ‘호사수구(狐死首丘)’라는 단어는 “여우가 죽을 때는 머리를 제가 살던 굴이 있는 언덕으로 돌린다”는 뜻에서 형성된 사자성어(四字成語)로 고향을 그리워함을 일컫는 말이다. 여우뿐만 아니라 말(馬)도 실제로 먼 거리를 달려 자기 고향을 찾아가서 사람을 감동시킨 일이 있다.
2005년 7월 8일 국립대만대학 법률학원에서 한국측 국민대 법대/북한법연구회ㆍ대만측 국립대만대학 법률학원(법과대학) 공동주최로 「중국ㆍ대만[양안(兩岸)]과 남ㆍ북한의 교류법제의 동향과 과제」라는 주제로 한ㆍ대만 국제학술세미나가 개최되었는데 필자는 종합토론자로 지정되어 이번으로 일곱 번째 국제학술세미나에 참가하고 돌아왔다. 한국측에서는 교수, 대학원생, 사법연수원생(판ㆍ검사ㆍ변호사 연수생) 등 21 명이 참가하였다.
필자는 종합토론에서 남ㆍ북 교류문제에 있어서 월남전 당시 한국군 포로가 북한에 생존하고 있다고 하므로 남ㆍ북 교류문제와 관련, 이들을 귀국시킬 수 있도록 거론 및 법제화하는 것이 좋겠다는 문제제기를 하고, 주제발표자에게 이에 대한 의견이 있으면 제시해달라고 하였다.
필자가 청룡부대(한국 해병대) 소총소대장으로 월남전에 참전할 때인 1960년대에 월맹과 몽골에서 있었던 실화(實話)를 소개한다.
1960년대 월남전 당시 공산주의 진영에 속했던 몽골은 가난해서 월맹을 도울게 마땅치 않았다. 몽골지도자들은 궁리 끝에 베트콩들의 수송작전에 쓰도록 말 1천 마리를 원조해주기로 하고 철도를 이용, 중국을 종단해 월맹의 수도 하노이[河內(하내)]로 보냈다. 그런데 그 중 한 마리가 현지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향이 그리워 자신이 타고 갔던 기차의 철길을 따라 8천리(3,200㎞)를 달려서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8천리라면 서울에서 부산을 여덟 번가는 거리로 비행기로 가도 여러 시간이 소요되는 거리인데 찾아간 것이다.
말이 돌아왔다는 소문이 퍼지자 몽골 여론이 들끓었다. 사람이 고생해야지 왜 죄 없는 말을 괴롭히느냐는 것이었다.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몽골 정부는 주인으로부터 그 말을 사서 암말 10마리와 함께 현 몽골 대통령궁이 있는 성산(聖山) ‘보그드’산에 방면했다.
“매우 미안하다, 이제부터 편안한 삶을 살라”는 사죄였다. 그 말은 암말들과 함께 제 수명을 자유롭게 누리다 죽자, 몽골 사람들은 다시 그 말을 기리기 위해 수도 울란바토르 근교 ‘투브’아이막[그 말의 교향-아이막은 우리나라 도(道)에 해당]에 그 말의 동상을 세웠다.
필자는 2004년 7월 9일 몽골 국립법제센터(울란바토르)에서 개최된 한ㆍ몽골 국제학술세미나에 참가, 1주일 간 몽골을
방문하였다. 몽골은 평균 해발고도가 약 1,500m정도 되는 고원국가로 면적은 1,566,550㎢로 남한의 17배에 해당한다. 전국토의 40%
가량이 사막지대이다. 인구는 약 270만 명이고, 그중 80만 명이 수도(首都) 울란바토르에 몰려 살고 있다.
몽골은 사회주의체제를
유지하다가 1992년 1월에 신헌법을 제정, 시장경제체제를 시행하고 있다. 즉 지금은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다. 현 집권당은 한국의 경제발전을
모델로 몽골의 경제를 발전시키겠다는 선거공약을 하여 국민의 지지를 받아 집권하였다고 한다.
우리군은 1964년 9월부터 1973년 1월까지 월남전에 참전하였다. 그런데 그때 소수의 한국군이 적군에게 포로가 되어 월맹으로 끌려갔으며 이들 중 극소수가 북한으로 강제로 압송되어 현재 북한에 생존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에서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2005년 3월말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된 제61차 유엔인권위원회에 참가 했던 우리나라 인권단체 변호사(女)가 이 사실을 거론한
일이 있다. 말도 고향이 그리워 8천리를 달려갔는데 하물며 사람, 고향을 그리워할 월남전 포로들을 데려와야 할 것이다.
교차로저널 kocus@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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