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을 앞 두고 있는 하남시 하산곡동 소재 미군기지 '캠프 콜번'이지역여론의 중심에 서 있다. 8만여평에 이르는 '캠프 콜번'의 기지 이전을 대비해 '청소년 수련시설' '실버타운' '교육시설' 유치를 준비해 온 하남시와 시민들의 입장과 국가주요시설인 팔당댐 방어를 위한 군사전략상의 명문을 내세워 한국군 재사용을 제시하고 있는 국군 55사단의 의견이 서로 다른 상황이다. '캠프 콜번'이 있는 고양골과 새능에서 태어난 원주민을 통해서 미군부대의 흔적을 더듬어 본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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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군부대 앞에 위치한 클럽의 모습으로 지금은 영업을 하지 않고 비워져 있다. | ||
하산곡에 처음 미군이 부대를 옮긴 시기는
언제인가?
이용근: 미군부대 '캠프 콜번'이 있는 마을 이름이 고양골인데, 이곳에서 태어나 이제 51살이 됐다. 지금
42살 된 동생이 태어난 해에 미군부대가 온다며 공사를 했으니, 미군부대가 하남시에 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43년 전으로 보면 된다.
미군부대의 변천과정은 어떠 했는가?
이용근:
처음에는 미사일기지 였는데 나중에 공병부대로 바뀌고 현재는 통신대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자세한 병력과 내부 사정은 전혀 알지 못한다.
주민들과 내왕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
'캠프 콜번' 정문에는 지금도 미군들이 사용했던 클럽과 '바' 들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용근: 처음 미군들이 왔던 시기인 60-70년대에는 고양골이 가장 번성했던 시기였다. 시골
골짜기인 고양골에 난생 처음 보는 미군들이 왔으며, 전혀 보지 못한 새로운 문화를 주민들은 경험하게 됐다.
미군부대 정문 바로 옆에는 '아리랑 클럽' '파라다이스 클럽' '김치클럽' '콜븐클럽' '81클럽'등 미군을 상대로 한 전용 클럽이 10여개 성업했으며, 이중에서 아리랑클럽은 약 100평 규모로 내부에는 당구장과 스낵바, 춤을 출 수 있는 소규모 스테이지가 갖춰져 있었다.
'하얀나비'로 유명한 가수 김정호도 고양골 밤무대에서부터 시작해서 유명해진 사람이다.
지금은 모두 없어지고 최근까지 '파라다이스 클럽'이 문을 열었으나, 얼마 전 이 마저도 문을 닫았다.
고양골에 미군들이 주둔하면서 생긴
변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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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캠프콜번과 고양골과의 인연을 전해 주는 하남시 하산곡동의 이용근씨 | ||
고양골의 주택중에서 조그만 헛간이라도 있으면 방을 만들었고, 그 방들은 곧 바로 양공주들이 들어와 살았다.
대부분의 양공주들은 미군들과 계약결혼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미군이 떠나면 관계가 끝나거나 함께 미국으로 떠나는 사례도 있었다.
이들 양공주들로 인해서 생긴 문제중 하나는, 당시에 고양골에는 목욕탕이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산곡천에는 매일 같이 수 십명의 양공주들이 나와서 목욕을 하는 통에 원주민 자녀들 교육상의 문제가 컸다.
지난 40여년간 미군부대와 함께 생활해 오면서 가장 기억나는 일은 무엇인가?
이용근: 지난 1991년에 발생한 '캠프 콜번'의 기름유출 사건이다.
산곡천에 기름띠가 흘러 다닌다는 주민들의 소문을 듣고 거슬러 올라가 보니, 미군부대에서 엄청난 양의 기름이 새 나왔던 사건으로 당시 중앙 일간지에서도 크게 보도돼서 전국적으로 알려진 사건이다.
그 사건 이후로 당시 관선시장이 나서서 고양골에 특별히 상수도 시설을 해 주기도 했다.
미군부대가 들어 올 당시에 수용되는 땅들의 시세는 어떠
했는가?
이용근: 윗 어른들의 말에 의하면 평당 400원 정도에 땅을 매각한 것으로 알고 있으며, 정부에서
하는 일 이라면서 별다른 반대가 없이 미군부대가 들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이공원 기자 lee@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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