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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우리들의 소망을 무너뜨리는가?<아침을열며> 방송대학교수 권광식
   

 

 

 

 

생명, 환경 다큐제작 준비를 위해 얼마전 세계여행중 스위스에 있을때 일이다. 배낭여행 한국인 대학생이 버린 오물 때문에 현지인과 시비하다 손칼을 꺼내 위협한 사건 하나로 스위스 신문 방송들이 근 한달간이나 야단치는 사건을 본 일이 있다.

생명존중의 생활화로 이어가고 그것이 행복의 조건이라고 여겨온 그들에게 쓰레기를 버린 일이나 폭력은 그들의 삶 속에서 그야말로 조금이라도 허락될 수 없는 흉악범인 것이다.

스위스와 같이 행복한 삶을 지켜가는 많은 나라들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생명존중의 평화주의가 그들 삶의 기본이요,그들의 공동체문화가 지향해야 될 방향으로 확실히 설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잘 살 수밖에 없는 나라와 빌어처먹을 수 밖에 없는 나라의 차이는 돈이 많고 적음이 아니라, 생명 환경을 지키는 생활의식의 차이임을 발견하게 된다.

교육열은 세계제일이고 정규학교외에 학원이 세계에서 제일 많은 나라, 예배당이 가장 많은나라, 병의원과 약방이 넘치는 나라인데도 교육과 건강과 안정이 가장 허약한 곳이 오늘 우리가 사는 곳이다.

아이들 교육의 바이블이라고 하는 <에밀>에서 루소는 “자연상태의 인간은  선하지만 오직 제도를 통해서만 악해진다.”고 말한다. 그래서 ?루소?는 우리에게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당부하고 있다. 자연을 소중히 모시는 마음이 없으면 아이들의 교육과 건강을 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시설과 개발과 성장을 위한 돈의 위력을 무시하면 어떤 곳에서도 설자리가 없다.

불과 10년전만 해도 우리 동네는 청정한 전원마을이었다. 그린벨트가 청정한 마을을 지켜준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지저분한 창고마을로 변해 있다.

녹음 우거진 산이 보여 집터를 잡았건만 앞을 봐도 창고요, 옆을 봐도 창고 산이다. 산이 창고 뒤에 숨어버린 국면의 마을이다.

사실은 창고 자체가 아니라 창고가 들어선 주위는 오물 쓰레기와 교통혼잡으로 개판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그나마 창고가 들어서지 않는 곳은 고물더미와 건축자재 야적장으로 이용돼 현금 화폐 소득원으로 둔갑하고 있다. 토지대장에는 엄연한 전답이지만 행정도, 관리도, 법규가 무시된 아사리판이 그곳이다. 담당 관리야 모를리 없겠으나 함께 사는(?)행정앞에 땅은 오염되어 주민의 삶의 질은 악화되고 있다. 행정따로,시민따로,복지따로,구호 따로가 일반화 되고 있다.

무엇이 청정도시이고, 어떻게 관리하는 청정이며, 누구를 위한 청정인지, 주민들은 알 수 없는 청정 구호만 난무하고 있다. 시청의 행정당국은 청정도시의 관리자인지, 훼방꾼인지 알 수가 없다. 한은 조사 자료의 시민 생활형편 전망지수도 전에보다 떨어진것(90에서 84로)으로 발표되고 있다.

이제 청정한 도시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시민이 나서야 할 때 임을 깨닫게하는 것들이 우리 주위를 포위해 들어오고 있다. 저기 조여요는 오염으로 완전 포위가 끝나면 시민은 탈출의 기회마져 잃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민 모두가 나서 우리들의 생명과 환경과 평화를 지키라는 것이다.

교차로저널  kocus@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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