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들은 오른쪽 간, 작은 아들은 왼쪽 간 절단
“다시 산다는 마음으로 남은 세상 살아 갈 터…”
[하남]급성간경화로 사경을 헤메던 아버지를 위해, 자신의 간을 떼내 아버지를 살린 두 아들의 미담이 알려져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올해 나이 49살인 정재익씨(덕풍동 한솔아파트)는 평범한 대한민국의 가장으로 자신을 일과 가정을 위해서 살아 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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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아들의 간으로 새 생명을 얻은 정재익씨 가족의 모습<좌로부터 작은 아들 정영구씨, 아버지 정재익씨, 어머니 강신숙씨, 큰 아들 정현구씨> | ||
정씨가 근무하는 직장은 현대자동차 경기광주지점으로 주로 화물차를 판매하고 있는 영업사원이지만 그의 명함에는 ‘판매장인’이라는 글씨가 유난히 눈에 띈다.
현대자동차 한 직장에서만 23년을 근무하고 있는 정씨는 화물차 1천500대를 판매하는 사원에서 부여하는 ‘판매장인’에 선정돼서 현대자동차 명예의 전당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전국에서 36번째 ‘판매장인’이자 광주.하남.이천.여주지역에서 유일하게 현업에 종사중인 ‘판매장인’이기도 하다.
‘판매장인’에 선정 된 이후 지금까지 총 2천100여대의 자동차를 판매해 온, 정씨의 판매 전략은 “고객들을 가족같이 생각하고, 고객의 일을 내 일 같이 처리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정씨의 성실함에 반한 차량인도자들은 고객이 됐고, 그 고객은 다시 단골고객이 되고 새로운 고객을 연결시켜 줬다.
일과 가족부양과 내집 마련을 목표로 나아가는 40대 말의 나이가 늘 그러하듯이, 바쁜 회사일로 자신의 건강에 대해서는 무심하게 지나쳐 온 지난 세월 이었다.
휴일이면 검단산 정상까지 1시간 30분에 왕복하던 정씨가 간에 이상을 느낀 것은 1997년.
의사는 간염이라고 하면서 치료를 계속해왔으나, 지난해 연말 병원검사에서 충격적인 황달수치가 나왔다.
정상수치가 1.2인데 정씨의 수치는 자그마치 39가 나왔다.
급성간경화에서 간부전으로 병세가 악화 되면서 집안에 곧 바로 어두운 그림자가 덮치기 시작했다.
현대자동차에 입사한지 꼭 23년째 되던 날인 금년 1월 10일, 서울아산병원에 긴급히 입원을 하게 된다.
병원에서는 간 이식수술만이 환자를 살릴 수 있다는 말을 했고, 가족들은 당황해 하기 시작했다.
병원측에서는 빠른 수술을 위해서 재촉을 했지만, 정씨는 담담하게 자신의 운명을 받아 들이고 있었다.
“흔히들 자식들의 간을 이식 받고 하지만, 애들에게 수술칼을 들이대게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 이었다”고 정씨는 당시를 말했다.
이러한 남편의 마음을 읽고 있던 부인 강신숙씨가 두 아들과 함께 대화를 나눴다.
큰 아들 정현구씨(24. 천안대 사회복지과)는 군대 갔다 와서 첫 학기를 다니던 중 이었고, 둘째 아들 정영구씨(23. 천안대 사회복지과) 군 제대 20여일을 앞 둔 상태였다.
두 아들은 이구동성으로 “당연히 우리의 간을 아버지에게 드려서 살려야 한다”고 하면서, 오히려 어머니를 위로했다.
3월 3일, 무려 17시간 동안의 대수술이 시작됐다.
남편과 두 아들이 마취돼서 수술실에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 보는 어머니 강씨는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제 할 수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안했다고 한다.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 이다는 믿음이 있어서 조바심 치지도 않았습니다. 가족을 믿었기 때문 입니다”라고 강씨는 말한다.
수술은 대성공 이었으나 오른쪽 간의 일부를 떼 낸 큰 아들과 왼쪽 간 전부를 떼 낸 작은 아들의 고통은 심했다.
두 아들은 수술 후 2달 동안 통증으로 고생을 했지만, 부모님들이 알게 될 까봐서 인상 한번 찌푸리지 못하고 오히려 아버지 걱정을 했다.
수술 후 4개월이 지난 지금은 두 아들과 아버지 정씨의 건강은 몰라보게 좋아졌다.
두 아들은 수술로 휴학을 했던 만큼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공부를 하고 있고, 아버지도 상태가 좋아져서 치료와 함께 오는 8월부터 다시 직장으로 나갈 계획이다.
“다시 산다는 마음과 새로 시작한다”는 각오로 하루 하루를 살아 가고 있다는 정재익씨는 이번 수술과정을 통해서 무엇보다도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한다.
“가족들이 있으니 간 이식도 가능한 일 이었다”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말했고 “예전에는 나 밖에는 모르고 살았지만 이번 일을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다 보니, 주위를 돌아 볼 수 있게 됐다”면서 친척과 친구, 지인들에 대한 시야도 새롭게 갖게 됐다.
“새 생명을 얻었으니까 지금부터라도 자기 자신을 소중히 생각하고 살아 가 줬으면 좋겠다”고 말 하는 부인 강신숙씨의 얼굴은, 가족에 대한
신뢰와 다시 찾은 가정의 행복으로 밝게 피어 있었다.
이공원 기자 lee@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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