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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일을 하며 산다.
일을 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사람이다.
농부는 논과 밭에 나가 땅을 갈고 씨뿌리고 곡식을 거두어
드리는 일을 하고, 직장인은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서류를 만들며 상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일을 한다. 가정 주부 역시 집안에서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아이를 돌보는 일을 한다. 학생은 또 공부라는 일을 한다. 이렇게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하면서 살게 되어 있는
존재다.
사람이 일을 함에 있어서 어떤 일을 하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렇다고 꼭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백수도 자기 일이 있으며,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아이들조차도 자기 일을 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꽃과 나무도 자기 나름의 일을 하며 살고,
산토끼나 오소리, 하늘을 나는 새도 하느님께서 자기에서 부여해 주신 일을 하며 산다.
그러기에 어떤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자기가 하는 일을 통해 자기를 살리는가, 그렇지 않는가 하는 것이 문제다. 땅강아지는 연실 땅을 파는 일을 하고, 쇠똥구리는 똥덩이를 굴린다. 들꽃은 가만히 서서 바람 따라 춤을 추고, 벌과 나비가 오면 꽃자리를 마련해 준다. 자연 속에 생명들은 자기 나름의 일을 하되 지나침도 부족함도 없이 일을 한다. 그래서 일에 구속되지 않고 일과 자기를 일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일을 힘겹고 고달픈 것으로 생각한다. 일은 돈을 벌기 위해서, 먹고살기 위해서 하는 일로 여기면서 일을 삶의 수단으로 전락시킨다. 이렇게 자기와 일을 분리함으로써 일에 끌려가게 된다.
30,40대 회사원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것이 과로사다. 과로사란 자기가 하는 일에 의해 목숨을 잃은 경우를 말한다. 남들보다 더 많은 성과물을 내야 하고,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일에 쫓기게 되고, 결국엔 일에 지배를 받아 목숨을 잃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무한경쟁,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노동에 소외되어 자기가 하는 일이 자기를 죽이는 것인지도 모르고 일에 쫓겨 살아간다.
일이야말로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일(예술)이다. 산업화가 되기 전에 우리 일터에는 흥겨움이 있었고 놀이가 있었다. 자연 절기에 따라 일을 했고, 일을 할 때마다 풍악을 울리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우리 선조들에게 있어서 일은 하나의 예술로 승화되었던 것이다. 더 이상 일은 힘겨운 노동이 아니었다. 일은 곧 문화가 되고 예술이 되고 역사가 되었다. 그때의 일은 우리 삶과 일치되어 일을 통해 나를 드러내고, 일을 통해 너와 내가 하나가 되고, 일을 통해 공동체를 이루고, 일을 통해 문화예술을 형성해 나갔던 것이다.
물질 중심의 현대 자본주의 사회 한 가운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일에 소외되어 사람 본질을 잃고 살아가면서 조금씩 사람이 마땅히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기 시작했다. 70~80년대 비좁은 공장에 갇혀 하루 12시간씩 쉬지 않고 기계의 부속품이 되어 일해왔던 우리는 이제 서서히
일과 사람, 일과 문화, 일과 종교, 일과 예술이 하나로 어우러질 때, 일이 더 이상 노동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이 일을 통해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돈을 많이 버는 일을 중요시했지만, 사람의 가치와 삶의 의미를 밝혀주고 드러내주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서서히 일은 사람을 사람되게 하는 것이며, 자기 존재를 들어내는 본질적 행위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교차로저널 kocus@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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