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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차차 고조되어 가고 있고 또한 문화원과
역사박물관 등에서 각종 문화활동을 전개하고 있어 다행스럽다.
우리 자신이 한 때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여기고 타기해야 할 대상으로 치부하여, 청화백자는 고물항아리로 팔아버리고, 한적(漢籍)은 불쏘시개나 도배하는 데 초배지로 사용하는 등 스스로
문화재에 대한 무례를 범한 시절도 있었다. 이런 결과로 우리의 문화재는 이미 많이 소실되었다. 그리고 도굴 및 불법반출 등으로 소멸되어
갔다.
하남시에서 사라져 간 문화재의 한 예를 들어본다.
능창대군(綾昌大君 1599-1615)은
조선왕조 제16대 인조왕의 동생이다. 능창대군은 제15대 광해군의 시기를 받아 신경희 등이 능창대군을 왕으로 추대하려한다는 모함을
받고 교동도에 유배되었다가 사사(賜死)되었다. 능창대군의 묘는 하남시 고골(춘궁동) 궁안 마을 뒷산에 있었다. 그 묘 앞에 석물인
장명등(長明燈)은 정교하여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것인데 수년 전에 도굴꾼들이 기중기와 트럭을 동원, 절취해갔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 후에
구(舊) 왕실 후손들이 능창대군 묘를 경기도 파주로 이장한다는 조건으로 그 임야를 매각하였다. 임야를 매도한 측에서 묘를 개장하는 것을
제지하려고 필자는 그 당시 하남문화원장(구자관)과 하광신문사장(엄종섭)에게 연락하여 이분들이 현장에 도착, 필자와 합세하여 공사를 중단시켰다.
그러나 낮에 몇 시간 공사를 중단시키는 효과에 불과했다. 그 날 밤에 주민들이 보지 않을 때 발굴해서 옮겨 갔다.
이 묘는 그
자체로서 역사이고 하남시의 유적이다. 하남시에서 이 묘와 석물을 문화재로 지정했더라면 이런 것은 방지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아있다.
하남시의 문화재는 이처럼 알게 모르게 소멸되어가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2000년 7월 서울 강연에서 프랑스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은 “한국인들은 문화적 부가가치에 대해 아직 인식이 부족하다”라고 지적하였다.
우리는 세계에 자랑할 만한 문화유산과
예술인들이 적지 않고, 김치 같은 독창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는데도 그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고 따라서 그에 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하거나 잘 활용하지
못한다는 충고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고골(古邑=옛고을=옛도읍)은 지명이 뜻하는 것처럼 하남위례성지역으로 확실시 되는
곳이어서, 지역 전체가 유물ㆍ유적이 산재한 유서 깊은 곳이다. 유물ㆍ유적을 조사ㆍ연구ㆍ발굴ㆍ보존 사업이, 깊은 관심의 대상, 개발의 대상,
투자의 대상으로 삼아져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하남시의 특화된 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자신들의 조상인 백제에 대한 인물과 이야기와 연결되기 때문에, 일본학자들의 백제에 대한 연구와 발표 자료는 상당히 많고
방대하다. 이러한 백제역사의 중심지였던 하남시는 역사와 유적을 도시개발 할 때에 특히 유념해서 보존해야 할 것이다. 백제의 옛 수도를 체계적으로
발굴ㆍ보전ㆍ복원하면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뿌리를 찾아서 하남으로 올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하남문화원과 역사박물관 등
관련부서에서 보다 더 활발하게 활동하여 주기를 희망한다.
교차로저널 kocus@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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