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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대사습 전국대회' 민요부분 '장원'박윤정 명창, 묵계월 선생 만나 새로운 인생

[하남]"88년도에 광복절 기념공연차 일본에 갔을 때 묵계월 선생님을 처음 만나게 됐는데, "너는 목이 좋으니 국악을 하는 것이 좋겠다"라고 말씀 하셔서 국악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지난 5월 3일 개최된 '제31회 MBC전주대사습 전국대회'에서 민요부분 '장원'의 영광을 안고 '명창'휘호를 받은 박윤정 명창(여.49)의 말이다.

   
▲ <제31회 MBC전주대사습 전국대회>에서 민요부분 <장원>에 입상한 박윤정 명창
전주대사습의 명성에 참여하고 명창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서 민요부분에는 전국에서 모인 300명의 참가자들이 열띤 예선을 치렀다.

예선을 거친 5명이 MBC의 생방송 카메라 앞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서 자신의 기량을 다해서 민요를 불렀다.

1991년 이후로 6번째 도전 끝에 장원에 입상한 박윤정 명창의 인생여정은 매우 독특하다.

친가쪽으로 한의원을 하시던 할아버지가 어려서부터 "청이 좋다"고 칭찬해 주셨고 초등학교 다닐 적에도 소풍을 가면 도 맡아서 노래를 불러야 했다.

"노래 잘 한다"는 말을 듣고 커서 인지 24살때에는 이미 트로트 가수가 됐고,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음반과 테이프를 5개나 가지고 있었다.

우연히 일본에서 만난 묵계월선생의 격려에 힘 입어서, 33살 때 트로트 가수에서 국악으로 활동 방향을 바꾸게 된다.

그 때가 1989년으로, 불과 15년만에 국악인으로서는 최정상의 자리인 '명창' 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묵계월선생의 집이 있는 신당동 소방서 뒤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주 4차례를 꼬박 꼬박 찾아가서 선생님의 지도아래 민요를 부르고 또 불렀다.

   
묵계월선생 밑에서 문하생으로 5년간을 공부하고 선생의 다음 말씀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하남시에 가서 국악협회 하남지부를 설립하고 후배를 양성하라"는 말씀이 있었다.
그 길로 하남시로 내려와 1999년에 국악협회 하남시지부를 결성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박윤정 명창은 1남 1녀를 둔 엄마의 역할과 하남시 국악의 책임자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노력하면서도 바쁜 시간을 쪼개서 용인대학교 국악과에서 경기민요를 전공했으며 현재는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경기민요를 전공하고 있다.

장래에는 국악과 경기민요로 대학에서 후배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꿈을 키우고 있는 박윤정 명창이 가장 즐겨 부르는 민요는 가사가 좋아서 '정선아리랑'과 '한 오백년'을 꼽는다.

딸이 명창이 된 순간, 눈물을 흘리셨다는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박윤정 명창은 여러가지 어려운 여건속에 있는 하남시의 국악계를 키워 나가기 위해서 주위를 쳐다보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고 있다.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국악인에 대한 대우가 미흡한 것을 느낄 때 마다, 국악을 중단 할까도 생각 했지만 한번 마음 먹은 일에 최선을 다 하자는 다짐으로 영광의 자리에 오른 박윤정 명창의 힘 있는 소리를 하남시민들이 자주 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공원 기자  lee@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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