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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정남한지(重訂南漢志) 번역본 발간홍경모의 책을 하남역사박물관서 출판

[하남]조선시대 학자인 관암(冠巖) 홍경모(洪敬謨. 1774-1851)가 지은, 당시 경기도 광주 지역의  지리지(地理地) 중정남한지(重訂南漢志)가 하남역사박물관에서 번역돼 책자로 나왔다.

   
▲ 하남역사박물관이 출판한 <중정 남한지> 책자표지
세종대 오성교수(인문대학 역사학과 교수)와 하남역사박물관 김세민관장에 의해서 완역된 ‘중정남한지’는 헌종 때 대사헌을 지낸 다음 판서가 되어 예조 ·호조 ·병조를 거쳐 돈령부판사(敦寧府判事)에 이르고 세상을 떠난 홍경모가 쓴 책으로, 당시 광주부를 중심으로 쓴 지리지이다.

 ‘중정남한지’는 ‘여지승람’과 ‘1779년 서명응(徐命膺)이 편찬한 ‘남성지(南城志), 그 밖에 중국의 여러 사서(史書)와 지리등의 편목을 수정.보완하여 새로운 체계를 갖추고, 삼국시대 이후의 우리나라 정치,경제,사회,문화,군사등에 대한 다각적인 내용들을 담고있다.

홍경모는 이책의 서문에서 “…서울에서 동남쪽으로 40리 떨어진 곳이 광주부이다. 백제의 옛 서울이요, 신라의 남한산주이다. 땅이 한강의 남쪽에 있고, 광주부가 한산 아래 위치하였기 때문에 남한이라고 한다. 고려 때부터 광주라고 불러 오늘날에도 그대로 부른다”

“…홍경모가 정조 갑진년(1784년. 정조 8)에 명을 받고 출진 했을 때 사적을 상고하는 일에 임하여 충분히 고증할 만한 것이 없고, 광주부에 옛 지(志)가 있기는 하나 끊어지고 썩어 문드러진 조각이라 신빙하기에 부족하였는데, 마침 서명응이 편찬한 ‘남성지’를 얻었다. 남성지는 정조 기해년에 서명응이 수어사로 있으면서 왕명을 받들어 수집한 것으로 책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이에 옛 지(志)와 섞어 거듭 정정하고 두루 국사와 야승에서 광주에 속한 것들을 캐내어 일을 비교하고 말을 엮으면서 옛 것을 손진하며 새로운 것을 더해서 나누고 구별하며 트고 나열하여 그 종류에 따라 무성하게 모아서 책을 이루니 무릇 13편이다……”

이 처럼 홍경모의 혼과 정성이 담겨서 만들어진 ‘남한지’에는 ‘산천’ ‘성씨’ ‘직관(職官)’ ‘학교’ ‘목장’ ‘부역’ ‘호구’ ‘물산(物産)’ ‘인물’ ‘효자’ ‘열녀’등 광주부 일대의 세세한 생활상과 실상을 조목조목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을 번역한 김세민 박사는 “중정남한지는 단순한 지방 읍지의 차원을 넘어 한 시대와 한 사회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는데 매우 유용한 문헌적 가치와 의의를 지니고 있다”고 발했다.

남한지에 기록된 백제관련 기록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 백제 온조의 고성은 한산 아래 있다. 살피건데, 백세사에 이르기를 온조왕 13년 한산 아래를 취하여 성궐을 세우고 위례성의 민호를 옮겨 이를 하남위례성이라 하였다. 한산은 지금의 일장산이요. 온조가 산 아래를 취해 성궐을 세웠다 하였으나, 성을 산 위에 세운 것이 아니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남한산성을 온조가 도읍했던 성이라고 하니, 무슨 근거로 하는 말인지 알 수가 없다. 대개 그 구도는 광주고읍이니, 지금의 검단산 아래가 곧 도읍했던 곳이고 여전히 옛터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이공원 기자  lee@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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