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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명 고(地名考)

   

 

 

 

 

지명하면 풍수지리(風水地理)를 연상하는 경우가 있다. 풍수지리연구가들에 따르면 풍수지리는 이기론(理氣論)과 형기론(形氣論)이 있는데, 형기론은 자연지리학에 기초한 이론이므로 이것은 과학이요, 환경이라는 것이다. 이기론은 생략한다. 

형기론에 따르면 주택이든 유택(幽宅)이든 그 입지조건은 다음과 같은 곳이 최선이다.

남쪽을 향해 자리 잡아야 하는 바, 좌청룡(左靑龍)- 왼쪽 즉 동쪽에는 청룡이 노는 물이 있고, 우백호(右白虎)- 오른쪽 즉 서쪽에는 백호가 뛰노는 숲이 있으며. 남주작(南朱雀)- 앞쪽 즉 남쪽에는 종달새가 우짖는 들판이 있고. 북현무(北玄武)- 뒤쪽 즉 북쪽에는 屛風(병풍)이 우뚝 솟은 산이 있을 것 등이다.

이런 지형이라면 사람이 살기에 좋은 곳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따라서 풍수지리에서 후손의 발복(發福)을 배제하면 풍수는 과학이며 환경사상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고래로 왕도(王都)나 궁전은 물론이고 귀족이나 부호(富豪)들은 이러한 조건에 맞는 곳을 찾아서 주택이나 유택의 위치를 정했던 것이다.

지명이 현실과 합치한 경우가 있는 것을 보면 지명을 잘 지어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명이 현실과 부합한 경우를 살펴본다.

수년 전에 필자의 군동기생인 L장군이 해병사령관 재직시 군동기생들을 초청해서 필자는 가족과 함께 해병대사령부를 방문한 일이 있었다. 그 때 L장군은 그 곳의 산이름과 바위명에 얽힌 전설이 현실이 되었다고 설명하였다.

해병대는 1948년 4월15일 경남 진해 ‘덕산(德山)’에서 창설되었다. 해병대는 1950년 한국전 때 ‘통영작전’ ‘도솔산작전’ 그리고 월남전에서 ‘짜빈동작전’ 등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그 후 1961년 해병대의 일부가 ‘5.16 군사혁명’에 가담함으로 인해서 십 수년 후 해병대사령부가 해체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그 다음 사령부를 재창설, 서울 00동 해군본부에 함께 있다가 경기도 화성군 00지역에 터전을 잡고 해병대사령부가 옮겨 갔는데 바로 그 사령부 앞에 있는 산의 명칭이 ‘덕산’이다. 따라서 해병대에서는 ‘제2의 덕산 시대를 맞았다’고 한다는 것이었다.

이 덕산의 봉우리 명칭이 ‘장군봉’이고 장군봉 아래 길 옆에 바위가 있는데 그 이름이 ‘사령(司令)바위’이고, 이 지역 주민들 사이에는 “언젠가는 사령(=장군)이 이곳에 올 것이다”라는 전설이 있었는데 마침내 바위 이름이 현실로써 나타난 것이라고 하였다.

인연치고는 참 묘한 인연이다.
이 ‘사령바위’는 현재 해병대사령부 영내에 있고, 사령관공관에서 거리가 얼마 되지도 않는다. 이 ‘사령바위’는 도로 바로 옆에 있지만, “이런 전설로 인해서 차도를 건설할 때 건드리지 않고 잘 보호하고 있다”고 하면서 “내가 이곳에 온 첫 사령”이라고 L장군은 말했다.

하남시에도 지명의 뜻과 같은 현상이 나타난 곳이 있다. 춘궁동의 자연마을 중에 이성산 동북쪽 밑에 “행길이(일명 행기리)”가 있는데 이 동네는 도로가 농로뿐이고 협소해서 자동차가 들어가기 어려운 곳이었다. 그런데 동네 이름은 ‘행길(=한 길=사람이 많이 다니는 큰 길)’이여서 필자(춘궁동 출생)는 어려서부터 마을 이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곳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판교 구리 간 고속도로가 건설되면서 이 동네로 고속도로(판교 구리 간 고속도로와 중부고속도로 하남분기점)가 개통되어 그야말로 ‘행길’이 되었다. 

우리가 평소에 부르는 지명이 이처럼 현실과 부합되는 경우를 보면서 지명에 대한 조상들의 선견지명을 느끼게 되고 지명을 지을 때는 잘 지어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교차로저널  kocus@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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