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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때 마을 안녕 위해 시작330년동안 풍속 계승, 학계에서 주목(엄미리 장승제)

   
엄미리 장승제는 그 역사가 33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병자란 당시 호군들이 남한산을 포위하고 있으면서 점령지 주민을 괴롭히고 전란이 끝난 직후부터 전염병이 창궐하여 부락의 안녕과 전염병 침투를 막기 위한 방편으로 시작된 것.
부락민들이 산신에게 치성을 드리고 부락 어구에 장승을 세워 수호토록 한데서 엄미리 장승제는 유래된다.

전국적으로 이러한 풍속을 지닌 곳이 많이 산재되어 있었고 광주 문화권에도 널리 퍼져 있었으나 지금까지 전해오는 곳은 초월읍 무갑리와 중부면 엄미리 밖에 없다.
그 중에서도 엄미리의 장승제는 옛 풍속을 그대로 전승하고 있어 무속학이나 민속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관심이 쏠려 장승제를 거행 할 때는 이러한 연구 조사진 들이 많이 몰려들고 있다.

장승제의 준비는 1달 전부터 제주의 선출로 시작된다.

장승제의 제주는 그 부락에서 가장 깨끗하고 부정이 없는 남자를 선정하게 되는데 구체적으로 상중(喪中)이라던지 가족 중 출산(出産)을 했다던지 환자가 있어도 안되고 흉물을 보았거나 만진 사람도 안된다.

제주로 선출된 사람은 제삿날까지 부인과 별거하며 매일 골짜기 깨끗한 물에서 목욕을 하여 몸을 깨끗이 하고 부정한 사람과 만나지도 못하며 한 달간 도를 닦는다.

그 동안 동리사람들은 산오리나무를 베어다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과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의 장승을 만든다.

만들어진 장승은 잘 보관하였다가 장승제날 세워지는데 장승을 세우기 전에 부락에서 지정한 산신터에서 밤제사를 지내고 이튿날 아침에 부락어구에 부락을 향하여 오른쪽에 천하대장군상을 그 맞은편 산기슭에 지하여장군을 상을 세우고 제사를 지낸다.

   

제사가 끝난 후 부락민들이 전부 모여 술과 떡을 나누어 먹고 부락의 안녕을 빈다.

원래 장승은 이정표나 불가의 경계 표시로 세웠었는데 부락주민의 단합이 잘된 곳일 수록 그 가치가 높이 인정되었다.

사모관대를 하고 서있는 장승의 모자뿔은 장승제가 끝나기 무섭게 도둑을 맞는데 그것은 그 뿔이 남자의 성기와 같다는 인식으로 임산부가 그것을 삶아 먹으면 아들을 낫는다는 미신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진다.

그래서 원래 장승을 세울 때 사모의 뿔을 그대로 놓아둔 곳은 한군데서도 찾을 수가 없다. 

이규웅 기자  aa5767@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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