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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시 북단에 가래여울이 있지만 옛날 한강을 다니던 배들은 도미협만 무사히 지나면 목적지인 한강까지 안전운행이 보장됐다.
옛 문헌에서는 이곳을 도미(渡迷), 두미(斗尾), 두미(斗迷)라고 하였고, 그 부근 마을을 배알미라고도 하였다.
하남에는 기록상으로는 도미진, 진촌진등으로 불리는 나루가 있었는데, 도미진의 경우 '중정남한지'에는 광주의 북쪽 동부면에 있다고 하였고, '동국여지지'에는 동서 양쪽의 산이 강을 마주보고 서 있다고 하였는데, 그 2개의 산은 검단산과 예봉산으로 그 사이가 도미진이 위치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이 책에서 '도미'라는 명칭에 대해서는 도미부인의 설화를 기록하고 도미부인 설화의 배경이 이곳이라고 하였다.
다산 정약용이 쓴 '아방강역고'에서는 백제의 하남위례성을 설명하면서 "동쪽의 높은 산은 검단산을 말한 것이요. 북쪽의 한수는 도미진"이라고 하여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백제건국설화에 나오는 한수(漢水)를 도미진이라고 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선조때 가뭄이 들자 6차례나 기우제를 지냈음에도 비가 오지 않자 장소를 옮겨 검단산 아래 도미진에서 기우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도미나루는 조선시대 현종때 만들어 진것으로 추정되는 동국여지지(東國與地志)라는 책의 우역조(郵驛條)에 나와있는 '도미부인'의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안고 있다.
도미는 백제의 소민(小民)으로 그 아내가 아름답고 어질었는데, 개루왕이 그 아름다움을 듣고 일을 만들어 도미를 궁중에 머물게 하고 밤중에 도미의 집으로 가서 통정하려고 하려다 실패하자 도미의 두 눈을 빼고 작은 배에 태워 강물에 띄워 보내고 도미부인에게 회유했으나 수절한 사연을 담고 있다.
이공원 기자 lee@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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