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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항은 또, 수양대군의 추종자들을 제거한 후 세조가 즉위하는데 1등 공신이기도 했다.
그런 그의 흔적이 광주시 퇴촌면 도마리에 있다.
경기도 기념물 제 33호로 지정 된 최항선생 묘가 자리하고 있는 것.
최항선생의 묘는 묘역에 비하여 봉분이 작으며 얕게 형성되 수성에 둘러졌고 봉분 좌우측에서는 묘비 전면에 발달석, 혼유석, 상석, 향로석, 주막석이 밀집되어 있다.
그 앞에 방형의 석등이 있다.
제단 좌우에는 문인석이 세워져 있다.
좌측 묘비는 묘소 설치 당시 건립 한 것이고 상석과 우측 묘비는 선생의 17대손이 약 300년전에 설치한 것이다.
선생은 태종 9년(1409)에 출생하여 세종 16년(1434)에 알성시에 장원급제하고 세종 25년(1443) 집현전학사 정인지 등과 함께 훈민정음을 언해하였으며 또한 용비어천가를 주해하였다.
단종1년(1453)에 승지로 있으면서 수양대군(뒤에 세조)을 추종하여 김종서 등 단종의 광지신을 제거하는데 가담, 그 공으로 세조가 즉위한 후 정웅공신 1등에 녹훈되고 공조판서에 승진하였다.
그 후 동국통감(東國通鑑)과 육전(六典)의 수찬(修撰)을 비롯하여 관음현상기(觀音現相記), 12준도(十二駿圖)등은 물론 명황계감
(明皇誡監)의 번역과 어제유장설(御製諭將說) 3편(篇)을 신숙주 등과 같이 주해(註解)하는 등 대표적인 문인으로 활약했다.
세조의 행상을
초집하였으며 또 좌익공신 2등에 성종2년(1471)에는 좌리공신1등에 책록되었다.
세조 13년(1467)영상에 이르고 예종 1년(1469)에 상정소(詳定所) 제조(提調)로서 경국대전(經國大典)과 세종실록을
수찬(修撰)하였으며 영성부원군에 진봉되었고 성종5년(1474)에 세상과 이별했다.
이규웅 기자 aa5767@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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