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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한국사에 대한 관심이 나라 안팎으로 고조되고 있다. 그것이 진정 우리의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려는 움직임이 아닐지라도, 무심하게 지내오던 우리 학계와 당국에 경각을 준 것은 틀림없다. 우리는 지금 너도나도 중국이 고구려의 역사를 빼앗고자 동북공정을 강행한다고 하여서, 또는 일본이 식민통치를 합리화하기 위해 식민사학을 부활하고자 한다 해서 감정을 불끈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감정만을 내세우는 이것이 과연 타당한 처사인지, 올바른 대처인지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그러한 빌미를 제공하게끔, 우리는 그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한 마디로 나는 최근의 그 같은 움직임은 그 동안 국제화니, 세계화니 하면서 내 역사에 대한 홀대가 가져 온 업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역사에 대하여 얼마나 고민하고 있는가? 말할 줄 아는 사람들은 역사를 바로 가르쳐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바로 가르칠 수 있는가? 그 방법은 있는가? 좀더 겸허하게 생각해 보자. 역사를 가르치고 배우는 기본적인 이유는 과거에 대한 이해를 통해 현재를 바로 인식하고 미래를 올바로 설계함에 있다. 역사를 통해 우리는 인식의 폭을 넓히고 사회 현상에 대해 비판적 안목을 갖게 되어 세상을 바로 보고 올바로 볼 수 있는 힘을 얻는다.
호사가적이고 골동품적인 역사는 역사의 본질을 외면하고 지엽적이고 감상적인 것을 주로 추구한다. 오늘의 한국사학(韓國史學)이 위기에 빠져 있다, 아니면 메마르고 단조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하는 것은 무엇이 바람직한 역사연구이고, 그 역사연구의 의미가 어디에 있는가 하는 근본적 물음에서 이탈되어 있기 때문이다. 역사교육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삶의 문제를 추구해야 하는 역사교육이 지엽적 사실만을 강요한다면, 참 교육은 본질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역사는 물론 사실(事實)을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삶의 기록이다. 삶의 기록이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삶의 외침이요, 삶의 의식이다. 그 외침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수 없다. 삶의 모습이 어제와 오늘이 같지 않고, 오늘과 내일의 그것이 다르게 변한다고 하여도 바람직한 삶을 살고자 하는 인간의 기본적 삶의 방향은 바뀌어 질 수 없다. 따라서 사람들은 온갖 모순과 도전 속에서도 자기 나름의 가치 기준을 설정하고 삶의 방향을 이끌어 가며, 그러한 속에서 역사는 그 모습을 구체화하고 있다.
우리가 역사를 가르치고 배우는 것은 지난날의 영화로운 때를 감상적으로 즐기고자 함이나, 또는 어려웠던 때를 생각하며 분개하고자 함에 있지 않다. 물론 역사는 인간 경험의 총체이기 때문에 사람들을 매혹하는 마술적 힘이 있다. 그 힘은 역사가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인간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구체적 사실이라는 데서 나오는 매력이다. 이 때문에 볼테르는 역사에는 계단을 올라가는 남자의 나막신 소리와 계단을 내려오는 여자의 비단 실내화 소리로 가득차 있다고 하여 역사가 가진 특이한 맛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학의 본질이 아니다. 과거를 추적하는 본래의 의도는 역사의 흐름을 통하여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삶이며 부딪치는 삶의 현장에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 하는 방향성의 제시에 있다. 물론 역사는 되풀이되지 않는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에서 엿볼 수 있는 고유함은 곧 어떤 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각각의 상황과 사건이 무질서하게 전개되었다고 하여도 경향이나 과정의 추출을 통해 논리적 구성이 가능하며, 이를 통해 어떠한 현상이 왜 일어났으며 어떻게 되리라는 전망을 할 수 있다. 그러한 역사적 감각은 사고력(思考力)ㆍ통찰력(洞察力)을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생활에 있어 기본적인 조건이 된다. 그리하여 존 듀이는 과거는 모든 학습의 절대적 선행조건(先行條件)이 된다고 하였다.
또 역사는 현재의 역사이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는 역사의 인식이 현재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미래에 대한 자신 있는 조망을 함에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즉, 역사를 인식하는 주체는 현재의 우리 자신이고, 따라서 역사의 문제는 현재의 문제로부터 그 실마리가 풀어져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역사가 흘러 간 과거의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살아 있는 삶의 모습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 참다운 역사인식이다.
현재를 바로 인식하고 미래를 올바로 설계하도록 살아있는 삶의 모습을 조명하는 것이 역사학의 본질이라면, 역사교육의 역할 역시 자명해진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자 역사적 동물이다. 오직 인간만이 과거에서 현재의 의미를 찾는다. 물리적 시간이 신체적인 성숙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라면, 역사적인 시간은 인간사회의 성숙을 가져다준다. 한 인간, 한 사회에 있어서의 역사는 그들에게 대리경험을 하게 해 줌으로써, 역사적 경험을 자기 경험화하여 당면한 문제의 해결과 행동방향의 결정에 직접 또는 간접적인 열쇠로 작용한다. 역사에서 다루는 변화의 개념(槪念), 진보(進步), 발전(發展), 인과관계(因果關係), 전망(展望)의 모색 등은 그것을 가능케 한 여러 사실에 대해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기능이 급변하는 현재사회에서 가치관의 부재 속에서 당황하는 학습자들을 위해 역사교육이 담당해야 할 역할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역사교육의 의도와는 달리 역사교육의 현실적 상황은 목표를 달성하게끔 교육과정이 운영되지 않고 있다. 그 제1차적 원인은 교육과정의 내용체계가 분명치 않았다는 데 있다. 실제로 종래의 역사교육에서는 교육과정의 의도가 어느 정도 반영되었는지 의문이다. 교과서의 편찬이 교육과정에 근거하여 이루어지고, 현장의 교육이 교과서에 의존하여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 때, 교육과정은 보다 구체화되고 현실성 있게 편제되어야 한다. 특히 사회변화에 유의하여 교육과정의 내용체계가 바뀌어져야 한다. 이에 나는 역사교육의 방향을 보다 실제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시대 변화에 대응하는 창조적 인간을 육성해야 한다. 역사교육은 단순한 지식의 교과가 아니라 가치관(價値觀)을 배양하는 교육이다. 즉, 역사교육에서는 오늘과 내일을 살아갈 학습자에게 당면한 문제를 올바로 파악하고 해결해 나날 수 있는 지혜를 길러준다. 오늘의 사회는 매우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흔히 오늘의 사회를 정보화, 국제화, 산업화의 사회라고 한다. 이 같은 사회에 부응하여 합리적 문제 해결을 시도하고 창조적으로 현실을 극복해야 하는데, 이에 역사교육에서도 창조적 사고와 합리적 문제해결을 위한 방향으로 교육목표와 내용체계를 구성해야 한다.
둘째, 살아있는 역사교육을 추구해야 한다. 해방 이후 역사교육에서는 민족사를 주지시키면서 역사의식을 함양하고자 함에 힘써 왔지만, 학습내용이 제도나 사건의 나열이어서 그 의도를 다하지 못했다. 더구나 그 동안 우리 교육의 현실은 합리적 삶의 양식과 비판적 사고를 배양하기에 여러 가지로 한계를 지녀왔다. 그럼에도 민주화 운동이 구체화되면서 사회적 갈등 해소와 문제해결능력의 배양이 크게 요청되었다. 이에 역사교육에서도 삶의 역사로서 내용을 구성, 그 역할에 보다 충실하도록 해야 한다. 즉, 역사 속에서의 인간의 고뇌를 밝혀 삶을 스스로 개척하기 위하여 그를 둘러싸고 있는 모순과 어떻게 갈등해 왔는가의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하며, 역사를 삶의 현장으로 보다 가깝게 이해토록 하기 위하여 특히 발전적, 변혁적으로 조감되도록 해야 한다.
셋째, 역사교육의 내재적 목표를 보다 강조해야 한다. 종래의 교육에서도 지식, 기능, 태도로 목표가 세분화되어 있었으나, 피상적 진술로 인하여 교육과정의 실효성을 높이는 데는 충분하지 못했다. 특히 학습자의 경험세계가 깊이 있게 고려되지 못하였다. 교육은 학습자가 습득한 경험의 질과 양에 따라서 달라지기 때문에. 교육에 대한 사회의 요구는 교육경험의 구성원리에 맞게 조직해 달라는 것이다. 특히 역사교육의 내용은 학습자들이 아직 경험하지 않은 삶의 경험을 추체험하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교과의 내용은 경험세계의 창출이라는 차원에서 구성되어야 한다. 창조적 사고력의 배양은 문제를 직접 해결하고 탐구하는 학생의 경험세계가 토대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내용을 진정 학습자 중심으로 꾸미고 활동 중심으로 진술을 구체화해야 한다.
요컨대 급변하는 현실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인지하는 것이고, 그것은 역사교육에서 비롯되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역사교육에서는 한 가지 역사적 사실에 있어서도 여러 가지의 견해와 해석이 있을 수 있음을 이해시키고, 그러면서도
다양한 견해와 해석 가운데 어느 것이 보다 역사적으로 진실성 있는가를 파악하도록 조심성 있게 역사를 추체험시켜야 할 것이다. 아무리 강대국들이
힘을 바탕으로 역사를 왜곡한다고 하여도 궁극적으로 진실은 밝혀지게 마련이다.
교차로저널 kocus@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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