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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89년 12월에 경기도기념물 제 119호로 지정되 지금에 이른다.
조선 1624년(인조 2)에 임진왜란으로 파손된 남한산성을 보수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전국에서 모인 승도들을 총지휘하는 본영 사찰(本營寺刹)로 창건됐다.
승려 각성(覺性)이 도총섭(都摠攝)이 되어 8도의 승병을 동원했고, 이들의 주둔을 위하여 전부터 있던 망월사, 옥정사 외에 한흥사, 국청사, 장경사, 천주사, 동림사, 동단사가 더 창건되었다.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때 의승방번(義僧防番)이 폐지될 때까지 370여 년간 수도 한양을 지켜 온 호국사찰로 번창했다.
전국 사원들의 승풍(僧風)을 규찰하는 규정소(糾正所)가 설치되어 명실상부한 조선 불교의 총본산 역할을 한 것.
이곳에는 1637년(인조 15)부터 대장경이 보관되어 왔으나 1970년 화재로 법당, 누각 등의 부속 건물과 함께 전소되었다.
그후 작은 건물 1동이 겨우 남았다가 선효화상(禪曉和尙)이 10여 년 동안 대각전(大覺殿), 요사(寮舍) 등의 건물을 신축하면서 새롭게 면모를 갖추었다.
현재 군기고지(軍器庫址), 누각지(樓閣址), 종각지(鐘閣址) 등에는 초석(礎石), 돌계단, 박석(薄石) 등이 남아 있어 옛 개원사의 규모와 건물의 배치를 짐작케 한다.
또한 남한산성 축성과 산성 수호 승병들이 사용했던 유분(鍮盆) 1점과 석장(石杖), 옹기, 함지 등의 유물이 보존되어 있다.
이규웅 기자 aa5767@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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