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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984년 ‘한국천주교회 200주년 기념대회’에서 시복된 103위 성인 가운데 71번째 성인인 김우집(김성우 안토니오)를 비롯해 천주교 박해시대에 많은 순교자가 묻혀있는 유서 깊은 사적지이다.
1795년 구산에서 태어 난 성인 김성우 안토니오는 1833년에 천주교인이 됐으며, 중국인 유방제 신부를 모시기 위해서 구산에서 머물면서 마을의 문중사람들을 교화시켜 나갔다.
1834년 유방제 신부에 이어 1836년 프랑스인 모방신부가 입국하자 그는 자기 집에 작은 공소를 마련하여 미사를 거행하면서 모방신부에게 우리말을 가르치는등 선교를 도왔다.
그러던 중 1839년 1월 기해박해가 일어 나면서 구산에도 그 여파가 밀려왔고 일시적으로 피신해 있다가 붙잡혀 혹독한 고문을 받으면서 배교를 강요 받았으나, “나는 천주교인이오. 살아도 천주교인으로 살고, 죽어도 천주교인으로 죽겠다”고 말했다.
그 후 감옥에서 숱한 고난을 받은 후 47살의 나이에 감옥에 갇힌 지 15개월 만에 결국 순교하였다.
특히 구산은 순교성인의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오며 성인의 묘소와 가족묘지를 함께 보존하고 있는 곳 이라는 지역적 특성이 있다.
구산성지는 성인의 순교 이후 160년 동안 교회를 지키며 신앙생활을 확고히 지켜가는 교우촌으로 존재 하였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서인지 한국전쟁 당시에도 구산성지는 원로신부들의 피신처로 아주 적합한 곳 이었다.
당시 피신한 원로 신부들은 낮에는 무성한 갈대 숲 사이에서 숨 죽이고 있다가 저녁에 나와 지친 몸을 쉬었다고 한다.
구산성지 사적지의 담장을 돌아 문을 들어서면 잔디밭 한 가운데 성모자상이 있는데,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학장을 지냈던 고 김세중 화백의 조각한 작품이다.
또한 사적지 안에는 자그마한 기와지중에 조그만 대문이 보이는데 그 안에 성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의 묘소와 현양비가 세워져 있다.
구산마을에 천주교가 언제 전파되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지만, 구산마을이 양근지방으로 가는 뱃길의 길목에 있었으며, 멀지 않은
곳에 천주교회의 진원지인 천진암이 있다는 점과 조선조 천주교 신자인 이벽 선생이 배알미 출신이고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 건너편 조안면에 살았다는
점을 생각 할 때, 일찍부터 천주교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는게 정설이다.
이공원 기자 lee@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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