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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 있는 중촌마을전주이씨 집성촌으로 최고의 인심

   
▲ 좌-이강교 선생 우-이재구 통장
법정동으로는 하남시 상사창 1동인 춘궁5통은 전주이씨  집성촌으로 '중촌마을' '중통마을'로 불리우고 있다.

총 70가구 가운데 50가구가 전주이씨 효령대군파와 무림군파로 씨족 사회성격이 강하게 남아 있는 마을이기도 하다.

마을 뒤로는 검단산 자락이 넉넉하게 펼쳐져 있고, 수질도 풍부하고 좋아 대부분의 집들이 지하수를 끌어 올려서 식수와 생수로 사용하고 있으며, 최근에 개축한 집에서 지하수성분검사를 한 결과 양질의 지하수임이 판명 되기도 했다.

1천400년 전인 이조 태조 때 당시 왕자의 난으로 이방원이가 등극하자, 곧 불어 닥칠 화를 피하기 위해서 무림군(정종대왕의 아들)이 이곳으로 피신해서 살기 시작했다는 중촌마을의 원주민들은 부추등의 밭작물로 생활하고 있으며, 외지인에서 들어와 살고 있는 사람들은 식당등의 요식업을 생업으로 삼고 있다.

마을 한복판에 있는 매우 큰 규모의 '성북교회'는 일제로부터 해방되고 난 1948년도에 건립됐는데 전주이씨들이 건축헌금을 모아서 건립했는데 세례교인이 100명이며 지금도 300여명의 주민들이 주일예배에 참석하고 있다.

   
  △248년전에 축성된 이기축 성생을 모신 사당

기독교 신앙이 일찍 전파된 이유로 이 동네에는 미신을 일찌감치 떨쳐 버린 개화된 생활을 해 왔다고 한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다는 이강교 선생(57.전 춘궁동 유.무형문화재보존회 회원)은 "지도상에는 '중전마을'로도 되어있고 '중통마을' 또는 '중촌마을'로도 불리지만 개인적으로는 중통마을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백제시대의 관제 직급에 '중통'이라는 직책이 있었는데 이 직책을 맡은 백제인이 이곳에 살았다는 기록이 있고, 아주 어려서 부터 구전으로 내려오는 말 들을 정리해 보면, 백제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만 신라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는 것.

춘궁동 5통의 이재구 통장은 "중촌마을의 인심은 하남시 어느 동네에 뒤지지 않는다"면서 "씨족끼리 모여 살다 보니 서로 말 조심을 하고 순수함이 남아있으며, 1년 내내 범죄가 없는 동네이다"고 자랑했다.

마을 회관 앞으로 7채의 집이 북두칠성의 지형을 따라 지어졌다는 뜻으로 이름 지어진 '칠성곡'을 중심으로 낮게 펼쳐진 동네 뒤산은 마을의 여유와 넉넉함을 한눈에 알게 해 준다.

이재구 통장은 "좁은 동네길에서 잦은 교통사고가 일어나고 있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시와 관계기관에서 반사경과 과속방지턱을 만들어 주면 한다"고 소박한 바람을 전했다.

지금도 동네 애경사가 있으면 모든 사람이 나서는 풍속을 이어나가는 중촌마을은 정말로 살고 싶은 동네중의 하나이다.

이공원 기자  lee@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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