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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단상

식목일에 뿌려둔 씨앗이 봄비에 쑥쑥 자라 이젠 여름이 무르익고 화단에 꽃이 활짝 피어 나비를 부르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관심을 부른다. 때론 잠시 과거를 반추해 볼 수 있는 생각의 전환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물론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특권이리라.
  작은 아이 키만큼 자라 활짝 핀 봉숭아는 이 사람 저 사람 손톱에 물을 들이려 뜯기기도 하는데 워낙 꽃이 많이 피어 있어 빈 자리가 표가 안 난다.

꼭 이맘 때 어릴 적 툇마루에 앉아 저녁별을 보며 찐 감자며 옥수수를 앞에 두고 화기애애한 이야기꽃이며 변변한 가전제품 하나 없던 시절 더위를 이기고자 무서운 이야기에 소름이 오싹 돋아 별보다 더 반짝이는 눈을 초롱초롱 밝혔던 날들이 있다. 이야기 끝엔 화단에 가지런히 피어 있는 봉숭아꽃과 여린 잎을 따다 콩콩 찧어 놓고 무명실을 같은 길이로 잘라 준비하고 비닐 봉지 싹둑싹둑 오려 놓으면 서로 먼저 손톱에 물들이려 엄마 앞에 바싹 다가서곤 했다.

손톱마다 봉숭아 칭칭 동여매고 나면 손마다 골무를 낀 것마냥 고깔 하나씩 뒤집어 쓴 우스운 모양이 되었지만 얼마나 예쁘게 물들까 기대 반 설렘 반으로 잠이 들었는데, 행여 봉숭아가 손가락을 빠져 나갈세라 절벽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지도 못한 채 머리 향해 손을 뻗어 고운 손톱 기대하며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잠은 저 멀리서 서성거리다 새벽을 부른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손톱에 칭칭 동여맨 봉숭아가 제대로 있나 살펴보곤 설레는 맘으로 실을 풀고 나면 손가락은 자글자글 쪼그라들어 볼 품 없다. 하지만 손톱은 서쪽 하늘을 곱게 물들인 노을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발갛게 물든 손톱을 보고 있으면 미래 백마 탄 왕자와의 첫사랑을 기약하고 첫 눈 오는 날 손톱에 봉숭아 물이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설을 떠올리며 기특한 듯 소중해지는 손톱이 되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문방구에 가면 손쉽게 물들일 수 있는 재료가 나와 있어 손톱 위에 올려놓고 5분 ~10분 정도만 기다리면 금세 손톱에 물이 드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시간도 절약하고 스피드를 갈망하는 현대 사회에선 그야말로 적절한 대처 수단이 아닐 수 없다.

문명의 발달로 인해, 현대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의 편리함은 이루 말로 헤아릴 수 없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현재의 일상은 매사가 빠르게, 한결 간편하게 되기를 바란다. 경쟁에서 지게 되면 도태되고 퇴화해야 하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과제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하지만 촌각을 다투며 발달하면서 상대적으로 잃어가는 것이 있음을 자의든 타의든 감수해야 할 부분들이 적지 않음을 실감한다.

다다이스트나 70년대 흙에 살자 노래했듯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자연에 귀의하고자 했던 현상들이 동시에 나타남을 볼 수 있다. 내일로 가는 준비엔 항상 대비책이 따르기 마련인가 보다.

어릴 적 엄마가 손톱에 물들이려 준비했던 과정이며 설레는 맘으로 땅거미 지는 툇마루에 앉아 밤 벌레 우는 소리에 미래에 대한 호기심에 부풀어 올랐던 것처럼, 꿈이 한없이 자라가고 있던, 엄마의 사랑과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에 적절한 놀이가 되었던 것처럼. 바쁘고 각박하게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한번쯤은 과거를 반추해 보면서 사는 건 살아가는 지혜가 아닐까.
 

화단에 활짝 웃고 있는 봉숭아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애정과 관심 속에 나날이 예쁜 꽃을 피워 사람들의 가슴에도 하나 둘씩 가슴에 환한 꽃불을 켠다.

 

교차로저널  kocus@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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