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산동 건물지는 오래전부터 자연석의 대형 초석이 줄을서서 지표면에 드러나 있었기 때문에 주위의 관심을 끌어 오던 중, 일부 향토사가들로부터 이 건물이 한성백제의 왕궁지라는 주장이 제기 되었다.
하남시에서는 이 건물이 어느 때의 건물이며 건물의 용도가 무엇인지 규명하기 위해서 1999년부터 2002년까지 기전문화재연구원에 의뢰해 4차에 걸친 발굴조사를 완료한 바 있다.
발굴결과 교산동 건물지는 시대적으로는 통일신라시대 말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창건 또는 중창되었음을 추정 할 수 있었다.
중심연대는 두 시기로 구분 할 수 있는데 첫째 시기는 9-12세기로 몽골의 침입이 있기 전까지이며, 둘째 시기는 15-17세기로 병자호란과 관련하여 광주읍지가 하남시 고골에서 남한산성으로 옮겨가기 이전 까지이다.
교산동 건물지의 발굴조사 면적은 약 3천여평 이었는데, 건물 모양은 'ㄷ'자 형태의 3-5회 중복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건물지에서는 주름무뉘 평편 및 막새류를 비롯한 청자, 백자편이 출토됨으로서 통일신라 말에서 조선후기까지 지속적으로 건물이 존재 했음을 파악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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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의 연대는 9-10세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8세기 이전으로 올라가는 유물은 없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기와는 고려시대가 주류이고 토기는 도기류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노출된 유구는 가옥이나 사찰건물로 보기에는 규모 및 평면상 적합하지 않았으며, 또한 사찰과 관련된 유물도 출토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 건물은 입지의 성격과 규모, 배치, 출토유물등을 감안해 볼 때 관에서 사용하던 관영 건물일 가능성이 가장 높게 제기 되었다.
그 이유는 교산동을 위시한 고골일대가 고대로부터 광주지역이 치소의 위치와 같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특히 광주객사라는 글씨가 쓰여진 기와가 출토된 것은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된다. 그러나 이 건물지에서 온돌시설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와, 인근 다른 지역에서도 같은 명문기와가 출토되었다는 증언이 있어 교산동 건물지가 광주객사 인지는 단정되지 않고
있다.
이공원 기자 lee@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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