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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제 폐지는 언제 ?

우리사회에는 몇 가지 ‘말릴 수 없는’ 없는 고정관념이 존재한다. 개인이 사적으로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이라면, 개인의 개성 또는 가치관의 문제로 덮어둘 수도 있는 일이겠으나 그 고정관념이 집단 무의식으로서 사회 전반의 진보와 평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라면 마땅히 털어 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 가운데 가정의 평화와 행복을 위협하고, 인권보호의 걸림돌이 되는 대표적인 악법이 자 관습인 호주제에 대한 고정관념은 단순한 오해의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다. 또한 일부 호주제 존치론자들이 호주제에 대한 사람들의 그릇된 관념에 기대는 한편, 정확한 역사적 배경과 개념을 무시한 채, 아름답고 정의로운 것인 양 그 오해들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어 문제다.

우리가 아는 데로 북한에는 호주제가 존재하지도 않는다. 우리 사회가 호주제를 부여잡고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폐단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 주류를 이루고 있는 가족제도는 핵가족이다. 농경시대의 대가족제도는 이미 전시대의 유물이 되어버린 지 오래인 것이다. 부모와 자녀 두 세대로 구성된 가족에서 ‘가족을 통솔하고 지배하며 가(家)를 이어가는 자“로서의 호주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젊은 세대 가운데는 자신의 호주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으리라고 짐작한다. 왜야하면 호주를 알건 모르건 사는데 전혀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성들은 호주제에 따라, 자녀에게 아버지의 성과 본만을 따르게 하고, 또 자녀를 아버지 호적에 입적하게 하는 것도 남성을 여성 보다 앞세우는 차별로 꼽는다. 부부의 동등한 권리를 외면할 뿐더러, 갈수록 재혼 가정이 늘어나는 현실도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지금의 호주제는 존치론자나 유림 쪽의 주장처럼 우리 전통적 가족제도가 아니라, 중국에서 전래된 종법제 위에 일제가 통치를 위해 옮겨 심은 제도일 뿐이라는 것이 여성계의 주장이다.

“호주제가 폐지하면 가족이 붕괴된다”는 호주제 존치론자들의 주장이다. 호주제 폐지가 곧 가족 해체로 이어진다면, 제 2차 대전후 호주제를 폐지한 일본이나, 사회주의 혁명이 진행되면서 호주제나 가장권 등을 완전히 폐지한 중국, 또는 호주제를 폐지한 북한 또는 아예 호주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서구는 현재 가족제도도 없고, 어른을 공경하는 풍속도 전혀 없어야 할 것이다. 과연 그런가.?

여성계가 지적하고 있는 일곱 가지의 대표적 호주제 피해유형을 보면, 남아선호를 부채질하고 모권과 모성을 부인하며 새 가족 구성원을 원천 봉쇄하는 새 세기로의 진입에 걸리적거리는 장애와 모순들로 가득하다. 더구나 일제의 통치 이데올로기의 잔재로서 여성이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킬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제도적 장치로서 버젓이 존재한다는 것은 피해 당사자인 여성들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그 심각성을 인식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공식화 된 법과 제도는 무형의 인간 사고를 그 틀에 은연중 꿰어 맞출 정도로 거대한 힘을 갖는다. 우리사회의 남성위주의 법, 체제, 구조가 불평등을 낳게 하고, 여성의 인간성 교묘하게 억압한다.

그러므로 “호주제는 모든 남성이 여성 보다 우월하다는 사상과 여성은 남성의 대를 잇는 도구라는 잠재적 인식이 숨어 있는 악법”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또 국가가 국민을 관리 파악하고자 하는 공문서인 호주제도 때문에 국민으로 하여금 대가 끊어진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따라서 여아보다 남아를 선호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양성평등 사회를 지향하고, 통일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 앞에  호주제는 남녀 불평등을 조장하는 낡은 제도로 더 이상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호주제와 함께 중국의 유교문화에 영향을 받은 풍습, 항렬 맞춰 이름 짓는 풍습도 등도 사라 져야할 때다. 이제는 여성문제가 여성들뿐만 아니라 시민운동 차원으로 발전시켜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문화운동이 확산되어왔다.

유독 우리사회만이 실질적으로 내용도 없는 일부에서 호주제를 고집하고 있어, 공공연하게 여성을 차별하고,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몰아 부치면서 편견과 불신을 부채질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성계가 여성 억압의 뿌리라 할 수 있는 호주제가 폐지돼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도 명백하다. 즉 다시 말하면, 호주제는 남아선호의식을 조장할 뿐 아니라, 그냥 보기에 사소해 보이는 일상 하나 하나에 파고들어 여성을 가정과 사회에서 법적으로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로 만든다. 그리고 이를 기본으로 성차별적 제도와 인식을 강화시킨다. 여성의 인간 존엄성을 짓밟아 하나의 당당한 인격체로 살아가는 것을 방해한다. 또한 현실적으로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일제시대의 잔재로 우리 전통과도 거리가 먼 제도이기 때문이다.

여성계는 이 같은 ‘호주제 폐지론’을 지속적으로 펼쳐왔고,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가정에 가장은 있어야한다. 호주제가 없으면 가족해체를 부른다. 조상은 누가 모시느냐” 등 호주제와 무관하거나 근거 없는 이유를 들어 호주제 폐지를 무조건 반대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여성이 당하는 불이익과는 좀 차이가 있을지라도 남성도 피해자인 것 마찬가지다. 한 사례를 들어보자.

ㅈ씨(26)는 미혼모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아버지와는 고등학교 졸업 후 한번 봤을 뿐 전혀 만 난적도 없고, 부모와 자식간의 정을 느껴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 호적에 입적돼 있고, 호주도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다. 실제 그의 유일한 가족인 어머니는 법적으로 아무런 관계도 아니고, 그의 법적 상속인이 될 수도 없다. 그는 자신과 어머니를 전혀 돌보지 않고, 거뜰떠 보지도 않았던 아버지의 호적에 올라있다는 게 참을 수 없어, 어머니 호적으로 옮기고 싶지만 당장에는 불가능하다. 장남에다 종손인 ㅈ씨는 아버지의 호주 승계 일 순위라, 아버지 돌아가신 후 호주 승계를 포기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만 한다. [여성신문], 2000년 7월 30일

이처럼 선택의 여지없이 아버지의 성씨와 본을 따르고(父姓優先原則) 부가(夫家)에 입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호주제도와 호적제도로 인해 우리는 일상 속에서 직, 간접적인 피해를 입어 왔다. 호주제가 폐지되지 않는 한 앞으로도 계속 피해자는 속출할 것으로 믿는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한 남아선호 사상은 여전히 심리적으로 여성을 억압하는 기제로 남을 것이다.

남아선호의 본질적 원인을 “가정과 사회에서의 여성의 열등한 지위라고 생각한다. 여성의 구시대적 의식을 유지시키고 있는 낡은 토대를 시급히 허물고 통일시대를 맞는 21세기에는 여남 동등한 새 토대를 구축하는 일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필자는 호주제 철폐를 비롯해서 여자가 ‘시집을 가는’ 부가입적제(夫家入籍制) 의 폐지와 엄마 성도 아이들에게 물려주는 제도의 마련에서 가능할 것으로 확신한다. 또 여성비하 사고와 차별관습의 개선 방안으로 여성 우선 지원제도가 정부차원에서 강력하게 추진되어야한다. 물론 먼저 여성 스스로가 현재 남성중심 가족문화를 바뀌어야 한다는 의식이 우선이며, 이와 함께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 여성의 사회적 지위향상이라는 측면에서 정부의 여성정책이 적극적으로 추진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제, 남녀 성별을 떠나 호주 제가 기본적 인권 침해임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지금 평화통일의 길 위에 서 있다. 바로 호주제는 전근대적 제도로 새 세기로의 진입을 가로막는 중대한 장애요인이란 것에 대해 전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그리고 이미 호적을 거부하고 양계 부모 성을 고집하며 ‘호주제 탈출’을 실행하고 있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그들의 힘을 결집시키고 개개인의 피해 사례들을 수집해 호주제의 밑그림이 얼마나 개인의 인권을 짓밟고 우리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지를 분명히 드러내야할 때다. 따라서 하루 속히 양성평등한 사회로, 남녀가 상생하는 행복한 사회문화를 정착 시켜야 한다.

교차로저널  kocus@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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