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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석탑의 특징은 각층의 몸돌 비율이 급격히 줄어 드는데에 있는데, 1층의 몸돌이 지나치게 큰데 비해서 2층과 3층은 현저히 줄어 들었고 지붕돌도 이에 비례해 줄어 들었다.
이러한 급격한 체감비율을 다른 탑에서는 찾아 보기 드문 것이지만 전체적으로는 매우 안정감이 있고 명확하고 세련된 수법을 보여주고 있는데, 상층 기단의 남면석과 상륜부는 소실 되었다.
하층기단은 지대석과 중석이 한 몸으로 만들어졌으며, 중석에는 안상(코끼리 눈모양)이 새겨져 있다.
하대갑석은 네 귀의 위쪽면이 호형(弧形:활등처럼 굽은 모양)을 이루고 있고, 상대중석을 받치는 중석받침이 2단으로 이루어 졌다.
상대중석은 각 면이 1매씩 모두 4매로 짜여 졌는데 현재 남쪽면 1매는 새로 만들어 끼운 것이다.
면석에는 우주가, 네귀에는 주가 얕게 새겨져 있고, 상대갑석은 2매의 판석으로 짜여 졌는데, 밑에는 얕은 부연(附緣)이 있고 윗 쪽에는 2단으로 된 몸돌 괴임이 새겨 있다.
상대갑석의 위쪽은 기울기가 뚜렷하다. 3층을 이루고 있는 탑신부는 각 층마다 몸돌과 지붕돌이 1매의 돌로 이루어졌다.
몸 돌에는 네 귀에 우주만 새겨져 있고 주는 물론 다른 장식이 전혀 없다. 옥개석은 층급 받침이 1·2층은 5단이고, 3층은 4단으로 줄었다.
낙수면(落水面)은 기울기가 완만하고 네 귀의 추녀에 보이는 전각은 반전이 뚜렷하다.
일제 강점기 때 서울로 옮겨졌다가 되돌아 왔다고 하는데, 크기나 형태가 다른 두개의 석탑이 나란히 서 있는 점은 어울리지 않을 뿐 아니라, 바로 옆에 있는 광주춘궁리 5층석탑(보물제12호)이 금당 중심과 일직선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이 3층 석탑이 이동 되었을 것 이라는 추측이 유력하다.
1966년 해제 보수공사를 할 때 탑 안에서 납석으로 만든 작은 탑들이 나왔으며, 2천년에 다시 해체 복원한 바 있다.
이공원 기자 lee@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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