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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왕사지가 있는 하남시 하사창동일대 | ||
[하남]하남시 하사창동 340번지 일대에 산재한 천왕사지(天王寺址)는 1975년부터 1천446년까지 5백여년 동안 실존했던 1만평 규모로 추정되는 대형 절터이다.
이 절터는 동쪽에 위치한 객산의 능선이 서쪽으로 뻗어 내려 오면서 평지를 이루다가 절터 부근에 와서 높이 2.5m 정도의 언덕과 연결되고 있다.
이 언덕은 사각형의 높은 단(壇) 형태로 이루어져 있는데, 현재는 밭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다.
‘천왕사지’에 대한 조사는 1995년부터 1년간 진행됐는데 그 과정에서 글자가 새겨진 기와조각과 막새류가 수습된 바 있다.
1920년경 조선총독부에서 곡정제일(谷井濟一)등이 만든 보고자료에 의하면 “하사창동에 폐사지가 있고, 객산의 서쪽 기슭 논 가운데에 낮은 토단이 있으며, 철불이 이곳에서 옮겨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후 1934년에 간행된 ‘백제고도안내기(百濟古都案內記)에도 하사창동에 관한 조사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천왕사지’는 광주향교로부터 남서쪽으로 700여미터 떨어진 지점에 위치 하는데, 1998년 7월경 주민들이 이 ‘천왕사지’터에 있는 민묘 1기를 이장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절의 초석으로 보이는 석재를 발견하면서 그 규모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당시 발견된 초석중 하나를 면밀히 살펴 본 결과, 직경 42Cm 크기의 사각 사리공임이 확인됐다.
또한 이 석재의 주변에는 방형의 벽돌이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어서 탑의 하부구조를 알 수 잇는 중거로 판단됐다.
학계 전문가들은 이 사리공 석재를 중심으로 청왕사지의 가람배치를 추정 하려는 시도를 했지만 동쪽 지역은 신축주택으로 둘러 쌓이고, 서쪽으로는 비닐하우스가 들어서 있기 때문에 정확한 조사에는 이르지 못했다.
문헌에 기록 된 ‘천왕사지’와 관련한 기록은 ‘고려사’ ‘고려사절요’ ‘원종국사혜진탑비’ ‘세종실록’등 4가지 정도이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실린 내용은 광주 천왕사에 있는 사리를 왕륜사로 옮겨 갔다는 내용이고 원종국사혜진탑비의 내용은 원종국사가 태조에게 광주 천왕사에서 머물겠다고 청하는 내용이며, 세종실록의 내용은 광주 천왕사의 사리를 대궐에 바쳤다는 내용이다.
천왕사지는 세종대 박물관에서 2차례의 지료조사를 실시했는데, 당시 1차 조사에서 약 1,800여평 정도의 면적을 조사했는데, 목탑지, 건물지, 담장지, 배수시설등 유구 22개소와 기와, 벽돌, 대형항아리, 청자등 97점의 유물이 출토되었었다.
이공원 기자 lee@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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