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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사동에서 발굴된 토기류 | ||
[하남]미사동 유적은 한강상류가 굽어 지면서 생긴 남북3Km, 동서1Km의 충적대지위에 위치하며 1960년 김원룡 교수에 의해 처음으로 학계에 보고 된 후, 1979년 사적으로 지정됐다.
1980년 1차 발굴 이후 1987년부터 1992년까지 3차례에 걸쳐 발굴조사가 실시되어 신석기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문화층을 확인하고 모두 466개의 유구를 발굴조사 했다.
미사동 유적은 인근에 있는 서울 암사동과 더불어서 한강 하류지역의 가장 중요한 유적중의 하나로 손 꼽히고 있다.
신석기 시대의 문화층에서 출토된 토기의 형태는 직립구연(直立口緣)에 첨저와 원저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뽀족밑으로 빗금무늬, 생선등뼈무늬, 점줄무늬,손톱무늬등이다.
청동기시대의 미사리 유적에서는 37기에 달하는 움집터와 소형 저장공 34기, 불땐자리등이 조사 되었고, 유물은 토기류와 석차가 발견 되었다.
토기류외 토제품으로는 어망추와 방추차가 발견 되었고 정교한 상아색의 석제 방추차와 장신구로 사용된 옥 파편도 발견 되었다.
석기류는 석부, 석촉, 어망추, 갈돌, 갈판등이 출토 되었으며 이로 미루어 미사리 신석기 사람들은 낚시보다는 그물로 물고기를 잡았던 것으로 보이며, 청동기시대의 석기로는 간돌검,반달검,돌도끼이 발견 되었다.
움집터인 주거지의 형태로는 방형과 원형 두 가지의 화덕이 나왔는데, 50~80센티미터 깊이로 굴토하여 바닥을 다진 후에 가운데에 강돌을 깔아 장방형의 화덕을 시설 하였다.
미사동 유적의 연대는 가장 빠른 시기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결과로 볼 때 중시연대는 기원전 3,000년경으로 판단되고 있는데 도토리와 같은 나무열매도 나왔다.
미사리 유적에서는 선사시대 뿐만 아니라 역사시대에 해당하는 원삼국시대와 백제시대의 유적도 발견되었다.
원삼국시대의 유구는 움집터와 고상식건물 저장공등이 있으며, 백제시대의 유구는 제일 윗층에서 확인 되었는데 사람이 살던 주거지와 저장공, 고상식건물 등이다.
특히 이 유적지에서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백제시대의 밭이 조사되기도 했다.
미사동 유적을 제외 하고는 하남시 일대에서 발굴 조사된 신석기시대 유적이 없어서 정확한 양상은 파악하기 어려우나 일본학자들에 의해서 선동과 춘궁동에서 빗살무늬토기가 수습된 적이 있으므로 앞으로 신석기시대의 유적발굴 가능성은 매우 높은 편이다.
이공원 기자 lee@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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