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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딸 잃으니 피눈물이 메이네"한 맺인 27년의 짧은 生 맴돌아

   
'지난 해 사랑하는 딸을 잃었고/ 올해에는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네/ 슬프고 슬픈 광릉 땅이여/ 두 무덤이 마주보고 있구나/ 백양나무에는 으스스 바람이 일어나고/ 도깨비불은 숲속에서 번쩍인다/ 지전(종이)으로 너의 혼을 부르고/ 너희 무덤에 술잔을 따르네/ 아아 너희들 남매의 혼은 / 밤마다 정겹게 어울려 놀으니/ 비록 배속에 아기가 있다 한들/ 어찌 그것이 자라기를 바라리오/ 황대노래를 부질없이 부르며/ 피눈물로 울다가 메이도다'

두 아이를 잃은 비통하고 처절한 어머니의 한이 맺힌 이 시(哭子)는 인간의 가장 큰 슬픔이 무엇인가를 알게 한다.

남편에게 미움을 받고 시어머니로부터 질타를 받는 한 맺힌 시간의 흐름속에도 그래도 한가닥 마음의 기쁨이었을 두 아이의 죽음에 아마 허난설헌도 삶의 의미를 잃었을 것이다.
17세의 젊은 나이에 시집생활을 시작 한 허난설헌.

그러나 그의 아픈 시집살이는 너무나 영특한 그의 재능에서부터 생긴 일이니, 어쩌면 허난설헌의 운명을 그렇게도 힘들도록 미리 정해져 있었나 보다.

관직에 있던 남편은 세인들로부터 아내가 더 뛰어나다라는 평에 허난설헌을 괴롭혔고 아들을 사랑한 시어머니 역시 아들보다 더한 아픔을 허난설헌에게 주었다.

두 아이를 잃고 써 내려간 싯구의 마지막엔 그래서인지 "피눈물로 울다가 메이도다"라고 가장 극한 표현을 사용했는지 모른다.

행복을 느끼지도 못하다 시집간지 10년만에 세상과 작별하게 되니 지지리도 복이 없었던 '당대의 재능꾼'으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슴을 저미게 한다.

숨을 다하면서도 한은 풀어지지 않으니 결국 허난설헌은 "내가 쓴 모든 시를 불태워 없애라"고 유언 해 슬픔과 고뇌, 외로움의 무게가 얼마만해는지를 가늠하게 한다.

광주시 추월면 지월리에 자리한 허난설헌의 묘는 찾는이로 하여금 절로 고개를 숙이게 하고, 지금을 살아가는 행복이 얼만큼 다행한지를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지난 1986년 뒤늦게 경기도기념물 제90호로 지정된 허난설헌의 묘는 그가 태어난 강원도를 향해 외마디의 말을 하고 있는 듯 하다

지금은 사랑하는 두 아이와 함께 있어 행복하다고...

이규웅 기자  aa5767@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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