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창우동 7통장으로 봉사하고 있는 윤영표통장은 "부근의 현충탑 코스는 도로포장이 되어 있는 반면에 이 길은 비포장 도로 남아 있어 자연의 느낌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 일 것이다"고 설명했다.
하남시 창우동은 백제가 도읍지를 하남위례성으로 결정 한 후 인근 한강의 물길을 이용해서 화물을 싣고 와서 창우리에 보관 한 후, 왕성인 위례성으로 옮겼다는 구전이 전해내려 오고 있는 곳이다.
창우동은 예전에는 '창모루'라고도 불렸으나 한자로 표기 하면서 창우동(倉隅洞)으로 지명이 변화했다.
창우동에는 두개의 큰 마을이 있는데, 아랫동네로도 호칭되는 '작평리'와 윗동네 '산골'이다.
작평리는 작밭들 이라고도 불리웠는데,
까지 작(鵲), 들 평(坪)자를 쓰고 있는데, 까치가 밭과 들에 유난히 많은 이유로 유래 한다고 전해진다.
창우동 7통지역은 풍수지리가들이 말하는 명당지역으로 손꼽히는 곳 이기도 하다.
현대그룹 창업자인 고 정주영회장의 묘소도 이곳에 있으며, 박정희 대통령시절에 부총리를 지냈으며 한국일보를 창업한 고 장기영선생의 묘소도 7통 지역에 위치해 있어서 이를 입증하고 있다.
예전에는 작평쪽의 상당수 땅들이 한국일보 장씨 가문의 소유였지만 대부분 팔려서 소유권이 이전 됐으나 아직도 큰 땅들은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윤통장의 할아버지대에서는 검단산에서 땔 나무를 베어내 서울 왕십리에서 팔아 겨우 생활을 이어왔었다고 한다.
현재의 7통지역에는 원주민 일부와 등산객을 상대로 음식점을 운영하기 위해서 외지에서 온 세대등 총 75세대 약 35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이곳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주민들은 "행정당국이 나서서 검단산 곳곳에 있는 불법 포장마차를 철거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자신들은 투자를 하고, 세금을 내고 있는 반면에 이들 불법업소들은 오폐수를 흘러 보내 자연환경을 훼손하고 자신들에게 올 등산객 손님을 중간에 가로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또한 일부 주민들은 "2002년 가을에 동네 주민들이 모여서, 하남시의 지원 없이 자체 하수관공사를 했었다"면서 "당시 가게를 운영하는 주민은 500만원, 일반 주민은 300만원씩을 모아서 하수관 공사를 마친 만큼, 최근 하남시가 시 전역에 대한 하수관거 정비공사를 준비하는 만큼 이에 대한 보상차원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는 중이다.
검단산이 끝나서 넓게 펼쳐진 대지위에 명당지세를 유지하고 있는 창우동 7통지역은 하남시가지와도 인접해 있어서 최고의 주거지로서 각광 받는 곳 이기도 하다.
이공원 기자
<저작권자 © 교차로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하남] "3호선 첫 삽도 안 떴는데...감일에 또 6,500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