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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어떠한 목적으로 왜 축조했는지 기록조차 없으며 남한산성을 쌓을 당시 숲속에서 발견됐다는 기록부터 침괘정의 역사는 서술된다.
침괘정. 남한산성 행궁 서쪽의 조그만 언덕위 풀숲에 자리잡고 있는 평범한 정각.
산성을 등반하며 우연히 침괘정을 맞이하는 관람객은 침괘정을 평가할 때 웅장하다거나 오묘한 건축물과는 거리가 먼, 그저 평범한 정각이라는 인상뿐 옛 건축기술이나 표면에서 드러나는 역사성은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외관상 평범하기만 하다.
그러나 침괘정의 수세기를 이어온 역사와 내부구조, 수백년이 지났음에도 원형이 남아있는 바닥 구들장 등은 밝혀지면 밝혀질수록 침괘정에 대한 의문과 역사성에 빠져들고 만다.
침괘정과 관련된 문헌은 1846년 홍경모가 광주역사를 수록한 "남한지"에 의해 극히 일부가 소개된다.
남한지에는 "인조 4년에 완풍군 이서가 성을 쌓을 당시 숲속에서 옛날 집 한 채를 찾아내니, 몇 백년이나 되었는지 알 길이 없건만 기둥과 주초가 모두 탄탄하고 방의 구들도 말짱하며 복판의 한 칸에 그 온오를 두어 몇 자를 높이었는데 아궁이에 불을 때면 높은 방이 먼저 덥고, 차차로 낮은 다른 방으로 번져 더워졌다"고 수록돼 있다.
또 "당시의 광주고장 주민들이 말하기를 '온조왕'의 '궁'이라고 하더라는 것이다"라는 문구가 남아있다.
그렇다면 침괘정은 백제의 1대왕인 온조왕(BC 18∼AD 28)의 궁.
광주시 산성리 소재에 온조왕의 숭렬전이 위치하는 것 등으로 비춰볼 때 충분히 가능성이 있으나 현재까지의 연구자료로는 이를 증빙하지 못하고 있다.
이후 남한지에는 "침괘정의 오른쪽으로 군기고를 세웠더니, 명나라 사신 부총병 정룡이 현판을 총과무고라고 쓰고, 밑에 숭정갑술(AD1634) 월일이라고 썼다"고 전하며 "정총병이 군기고 벽에 용을 그렸는데 비가 오려고 하면, 구름 기운이 그 사이에서 나고, 멀리서 보면, 날아 움직이는 기세가 있어 혹시 비가오기를 빌던지 하면 반응이 있었다"고 수록했다.
난초나 용은 지금 퇴색해 지워져 자취가 없으며 영조 27년(AD1751)에 유수 이기진이 편액을 걸고 '침괘정'이라 명해 현재가지 불려져 오고 있다.
강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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