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경제
최고의 라이브가수와 음악매니아 공존

국내 최초의 라이브카페 문화가 출발한 ‘미사리카페촌’.  하남만이 가질 수 있는 ‘미사리카페촌’이 시대의 급격한 변화와 적응하지 못하고 힘든 몸짓을 이어 나가고 있다.‘미사리카페촌’의 전통과 문화와 역사를 이어 나가기 위한 아래 순서로 기획기사를 시작한다.

1.‘미사리카페촌’의 오늘     2.미사리를 찾는 사람들      3.고액 출연료에 신음하는 업소들      4. ‘미사리카페촌’의 미래           5. ‘미사리카페촌’ 활성화 좌담회

 

문화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문화예술인, 관객, 공연장의 3박자가 모두 갖춰져야 한다. 현대에 있어서는 일반기업들만 적용해 오던 '공연기획과 마케팅'도 포함해서 4대요소로 분류하는 사람들도 있다.

불과 4~5년 전 까지만 해도 '미사리카페촌'에는 이들 3박자가 고루 갖춰져 있었다.

   
우선 문화예술인을 보면 국내 최고로 자타가 인정하는 최정상의 대중가수들과 언더그라운드 출신의 신인가수들이 미사리에서 자신들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하고 대중과 가까이 호흡해 왔다.

60대의 흘러간 대중가요와 70년대의 유명한 포크가수부터 80년대의 민중가수, 그리고 홍대와 이대등지의 지하 공연장에서 시작한 언더 락그룹과 신예 포크가수등이 미사리에 둥지를 틀었다.

많은 음악인들이 찾았지만 '미사리카페촌'이 명성을 날리기 시작한 것은 쟁쟁한 통기타 가수들의 출연으로 인한 미사리만의 독특한 음악세계를 구축 하면서 부터이다.

일부에서는 "미사리카페촌은 통기타 문화이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다.

송창식,김민기,양희은,한대수,김장호,이장희,어니언스,안치환,김광석,여행스케치등 70~80년대 저항가요와 민중가요로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포크가수들이 다양한 시 언어를 통기타에 얹혀서 90년대 중반기부터 미사리를 찾아 들기 시작했다.

이들 가수들도 미사리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것을 다름 아닌 자신들의 음악을 이해하는 세대가 미사리에 있었기 때문인데, 다름 아닌 중년층의 포크매니아와 순수음악 매니아층 이었다.

이들 중년층들은 무리를 지어서 미사리를 찾았다. 자신들의 과거를 공유 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미사리를 선택했으며 그들은 행복해했다.

3박자중 하나인 관객이 미사리에 넘치게 된 것이다.

   
70년대 20대와 30대 초반이었던 이들은 90년대에 이미 중년의 나이로 변했지만 자신들의 청춘시절을 함께 했던 포크가요와 포크가수의 음악을 다시 직접 듣고 직접 만나고 싶어했다.
그 중년층들의 호응은 폭발적이었고, 그들은 전국에서 모여 들었다.

미사리카페촌'이 한창 전성기였던 90년대 중반에는 상당한 음악수준을 지닌 포크매니아들이 자신들의 우상이었던 포크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감동했고 추억속에 있던 청년시절의 아픔과 고뇌를 되살리면서 공감대를 형성해 나갔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정상급의 라이브 포크음악 들을 수 있는 곳으로 미사리는 각광 받기 시작했다.

겉만 요란한 방송출연과 밤무대등의 상업적 무대에 식상한 포크가수들과 자신들의 청춘을 같이 했던 포크음악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던 중년층간의 묘한 일치점이 만들어져서 그것을 기폭제로 미사리는 발전해 나갔다.

미사리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젊은층들도 포크음악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고, 홍대앞과 대학로등지의 라이브무대에 출연하던 무명 포크가수와 통기타 가수들도 미사리로 흘러 들기 시작했다.

이러한 분위기를 감지한 미사리의 라이브카페 경영주들은 무대와 조명,음향등에 과감한 투자를 계속해서 뮤지션들의 음악활동을 지원했다.

이때가 90년대 후반기로 미사리의 최대 전성기였다.

미사리의 밤 라이브 무대에는 음악인들이 넘쳤고, 그들의 음악을 들기 위해서 서울과 경기를 비롯한 전국에서 몰려온 차량으로 복새통을 이뤘다.

이공원 기자  

<저작권자 © 교차로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공원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개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