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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의 연무관은 이러한 의미에서 요즘의 장교급 군인. 즉, 당시 병졸이 아닌 무관을 육성하는 연마장으로도 활용되고 성을 지키는 군사들의 무예 연마장이라 표현할 수 있다.
역사에는 이곳이 군졸들이 무기를 닦던 곳으로도 전해지고 무술을 닦고 무예가 뛰어난 사람을 뽑아 한양으로 보냈다는 문구가 남아있기도 하지만 산성을 지키는 군사들의 무예연마장으로 활용됐다는 기록이 가장 많다.
광주시 향토문화연구소 박광운 소장에 의하면 "남한산성의 연무관은 수어청에서 군사들을 조련시키는데 병역의 의무를 수행해야할 양반집 자재나 사대부집안 자재들을 대상으로 자질이 있고 성적이 훌륭한 사람을 뽑아 수어사가 추전장을 전하면 한양에서 무과시험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무관 육성소 역할을 담당하던 곳"이라고 전했다.
또 "연무관 뒤편에는 활을 연마할 수 있는 과녁이 마련돼 있었는데 양반집 자재 외에도 일반 군졸들에게도 일년에 한번정도 실력을 평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군졸보다 높은 직위가 수여됐다는 기록도 있다"고 전했다.
남한산성내 동편 산록에 위치하고 있는 연무관.
1624년(인조2년) 중부면 산성리에 남한산성을 축성할 때 함께 건립된 것으로 전해지며 처음에 연무당이라 부르던 것을 숙종 때 수어사 김재호(金在好)에게 개수하도록 명하고 '연병관(練兵館)'이라 쓴 편액을 내렸다고 전해진다. 정조 때는 수어영이라 개칭하였으나, 그 뒤에도 보통 연병관 또는 연무관이라 불려져 왔다.
구조는 한식 목조 단층 건물로 정면 5칸, 측면 3칸에 건평 37평의 건물로 전면 기둥은 원기둥으로 세우고 4개의 주련(主聯)을 걸어놓았으며, 통나무에 글이 씌어 있는데 "옥과 같이 단단한 진터와 철벽과 같이 견고한 성곽이 높은 산 위에 축조되어 있고 풍운을 탄 용처가 기이한 힘을 내는도다"라고 안쪽을 파내어 기둥에 부착해 놓았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그 글귀에 내포하는 의미가 당시의 남한산성이 국가에 미치는 영향과 연무관을 거쳐가는 무사들의 마음가짐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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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호 기자 kai76@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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