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를 다닐 때, 동네 이장 집에도 없던 일제 자전거를 타고 다녔는데 당시 방앗간을 운영하던 부모 덕택에 어린 시절은 유복하게 보냈었고, 망월동 '하망'에서는 무서운 아이로 불렸습니다"
상일초교와 남한중 4회를 졸업한 하남시 망월동 태생의 심우만 교수(58.장안대학 식품영양과 교수)는 첫 만남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환갑을 바라보는 심우만 교수의 손은 학자의 손이 아니고, 주먹의 명치부분이 하얗게 벗져진 운동선수의 손을 가지고 있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이러한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은, 심교수가 체력단련과 주먹단련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공을 쏟았었는지 짐작케 한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아이들이 20여명이 모여 있다가도 내가 나타나면 슬그머니 흩어졌고, 중.고교 시절에는 규율부장으로 못된 아이들 혼내기에 앞장섰고,교수가 되기 전 까지만 해도 정의가 아닌 것에는 자기 일이 아니라도 물불을 가리지 않고 나섰다"고 심교수는 말했다.
이처럼 다혈질의 성격으로 운동을 좋아 했지만,일단 대학에 들어가서는 학업에 몰두했다.
중앙대학교와 중앙대 대학원에서는 줄곧 장학금을 받는 대 변신을 하게 된다.
"중앙대가 있는 흑석동 골방에 살면서 온 힘을 다해서 공부했더니, 첫 장학금을 받게됐고 그 기쁨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더 열심히 하다보니 성적은 더 좋아지더라"라고 심교수는 회상했다.
심교수가 선택한 식품가공학과는 국내에 최초 학과가 개설된 분야로 심교수는 미개척 분야인 이 학문에 도전하는 국내 1세대로 분류된다.
인생에 먹거리만큼 중요한게 없다는 판단아래 식품가공학과를 선택한 심교수는 1985년 박사학위를 취득했는데, 현재까지 10여편의 저서와 60여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특히 단백질구조를 1~493가지 배열순서로 정리한 '베타아미나제'관련 논문은 전세계 27개국 56개 기관에서 심박사의 논문제공을 요청 받기도 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좋아하라"는 신조를 밝힌 심교수는 "누구나 미래의 성공을 꿈꾸며, 시대에 따라 성공의 모습이나 성공에 도달하는 법칙도 다르다"면서 "많은 성공한 분들을 만났고, 이들의 근검하고 창의력 넘치는 요소들을 발견했는데, 이를 정리해 보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좋아하라'는 것 이었다"고 강조했다.
대학강단에 선 1979년부터 수많은 후학들을 배출했는데 이제는 이들이 사회의 핵심자리에 앉아서 자신들의 일을 하는 모습을 볼 때 자신의 일에 긍지를 갖는다고 한다.
"이제는 '먹는다'는 의미 이상의 것을 생각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이 시점에서 식품 및 조리와 영양에 관한 학문을 통해서 국민의 식생활 개선에 조그만 보탬이 되고 있다는 것에 감사를 느낀다"고 한다.
3남 4녀의 가정에서 태어나 지금도 고향인 망월동에는 친형님과 친동생이 살고 있고, 부모님의 선산도 광주시 중부면 엄미리 선왕당 옆에 있어서 고향인 하남을 자주 찾는다고 한다.
"지금의 하남시 모습은 그린벨트지정으로 도시개발도 안 되고, 그런다고 보존도 제대로 안된 균형을 잃은 도시형태이다"면서 안타까워 했다.
모처럼 찾은 고향방문길에서 우연히 고골초등학교 총동문회장 이.취임식장에 참석 하고는 그 곳에서 만난 어린시절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돌아서는 심우만 교수의 뒷 모습에는 아직도 패기가 넘쳐 있었다.
상일초교와 남한중 4회를 졸업한 하남시 망월동 태생의 심우만 교수(58.장안대학 식품영양과 교수)는 첫 만남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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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안대학교 식품영양학과 심우만 교수 | ||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이러한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은, 심교수가 체력단련과 주먹단련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공을 쏟았었는지 짐작케 한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아이들이 20여명이 모여 있다가도 내가 나타나면 슬그머니 흩어졌고, 중.고교 시절에는 규율부장으로 못된 아이들 혼내기에 앞장섰고,교수가 되기 전 까지만 해도 정의가 아닌 것에는 자기 일이 아니라도 물불을 가리지 않고 나섰다"고 심교수는 말했다.
이처럼 다혈질의 성격으로 운동을 좋아 했지만,일단 대학에 들어가서는 학업에 몰두했다.
중앙대학교와 중앙대 대학원에서는 줄곧 장학금을 받는 대 변신을 하게 된다.
"중앙대가 있는 흑석동 골방에 살면서 온 힘을 다해서 공부했더니, 첫 장학금을 받게됐고 그 기쁨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더 열심히 하다보니 성적은 더 좋아지더라"라고 심교수는 회상했다.
심교수가 선택한 식품가공학과는 국내에 최초 학과가 개설된 분야로 심교수는 미개척 분야인 이 학문에 도전하는 국내 1세대로 분류된다.
인생에 먹거리만큼 중요한게 없다는 판단아래 식품가공학과를 선택한 심교수는 1985년 박사학위를 취득했는데, 현재까지 10여편의 저서와 60여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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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교인 남한중학교를 찾은 심우만 교수 | ||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좋아하라"는 신조를 밝힌 심교수는 "누구나 미래의 성공을 꿈꾸며, 시대에 따라 성공의 모습이나 성공에 도달하는 법칙도 다르다"면서 "많은 성공한 분들을 만났고, 이들의 근검하고 창의력 넘치는 요소들을 발견했는데, 이를 정리해 보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좋아하라'는 것 이었다"고 강조했다.
대학강단에 선 1979년부터 수많은 후학들을 배출했는데 이제는 이들이 사회의 핵심자리에 앉아서 자신들의 일을 하는 모습을 볼 때 자신의 일에 긍지를 갖는다고 한다.
"이제는 '먹는다'는 의미 이상의 것을 생각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이 시점에서 식품 및 조리와 영양에 관한 학문을 통해서 국민의 식생활 개선에 조그만 보탬이 되고 있다는 것에 감사를 느낀다"고 한다.
3남 4녀의 가정에서 태어나 지금도 고향인 망월동에는 친형님과 친동생이 살고 있고, 부모님의 선산도 광주시 중부면 엄미리 선왕당 옆에 있어서 고향인 하남을 자주 찾는다고 한다.
"지금의 하남시 모습은 그린벨트지정으로 도시개발도 안 되고, 그런다고 보존도 제대로 안된 균형을 잃은 도시형태이다"면서 안타까워 했다.
모처럼 찾은 고향방문길에서 우연히 고골초등학교 총동문회장 이.취임식장에 참석 하고는 그 곳에서 만난 어린시절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돌아서는 심우만 교수의 뒷 모습에는 아직도 패기가 넘쳐 있었다.
이공원 기자 lee@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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