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의 정기가 전달되는 우리동네, 광지원리.
광주시 중부면 광지원리 주민들의 인심은 올 2월에 있었던 광지원초등학교 졸업식에서 여지없이 나타났다.
전체학생이 120명 남짖한 광지원초등학교의 2004년도 졸업생은 모두 16명.
이들 모든 졸업생에게는 상장과 함께 봉투가 주어졌다.
마을 주민들이 한푼두푼 모은 돈으로 졸업생모두에게 각각 10만원씩의 장학금이 든 봉투가 전달된 것.
장학금의 성격도 가지가지이지만 마을을 사랑하고 마을의 미래가 행복하기를 소망하는 주민들의 소박한 정인 담긴 졸업식장의 장학금은 광지원리 주민들의 하나된 마음을 읽기에 충분하다.
전통적으로 광지원리를 대내외에 알려지게 한 것은 4백년동안 이어진 '해동화제'다.
매년 정월 대보름날 각 집집마다 섶나무 한 짐씩을 모아 21줄의 동아줄로 묶어 세웠다가 원(연못)앞에 달이 비칠 때 위에서부터 불을 붙여 완전히 태워 마을의 안녕을 비는 행사가 해동화제다.
해동화제 때 불을 붙이는 사람은 전년도에 아들을 낳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점도 행사가 얼마나 정성스레 치루어지는가를 가늠할 수 있다.
그러나 유구한 전통이 있는 해동화제가 아직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데다 광주시의 지원마저 열악 해 매년 주민들이 2천만원 정도의 기금을 십시일반 모아 행사를 치르고 있어 안타까운 현실이다.
광지원리 주민들의 바램 역시 소박하다.
그린벨트가 풀려 땅값이 올랐으면 하는 바램은 광지원리 주민들에겐 사치다.
단지, 우선 남한산성으로 연결되는 도로 주변이 정비 돼 남한산성을 찾는 외지인이 기분 좋게 여행을 즐겼으면 하는 것.
또, 학생들이 성남시 소재 학교로 통학하는데 있어 통학버스가 잘 연결돼 짧은 시간에 통학을 할 수 있데 되는 것.
이런 소박한 바램들을 갖고 있는 곳이 광지원리 주민들이다.
광지원리의 지명어는 지난 명종왕 시정 어느 선비가 집에서 시간을 보내다 밖에서 불기둥이 이는 것 같아 문을 열어보니 마치 '연못에서 빛이 일어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 그때부터 마을이름이 광지원(光池院)리라 했다.
1750년경에 이씨 성이 주를 이루었지만 그 이후로는 정씨, 권씨, 오씨, 강씨 등이 마을에 거주해 오기 시작했다.
마을주민이 원하던 광지원초등학교는 지난 1945년에 세워졌고, 1969년엔 단위농협이 결성 되는 기쁨을 누렸다.
광주시 중부면 광지원리 주민들의 인심은 올 2월에 있었던 광지원초등학교 졸업식에서 여지없이 나타났다.
전체학생이 120명 남짖한 광지원초등학교의 2004년도 졸업생은 모두 16명.
이들 모든 졸업생에게는 상장과 함께 봉투가 주어졌다.
마을 주민들이 한푼두푼 모은 돈으로 졸업생모두에게 각각 10만원씩의 장학금이 든 봉투가 전달된 것.
장학금의 성격도 가지가지이지만 마을을 사랑하고 마을의 미래가 행복하기를 소망하는 주민들의 소박한 정인 담긴 졸업식장의 장학금은 광지원리 주민들의 하나된 마음을 읽기에 충분하다.
전통적으로 광지원리를 대내외에 알려지게 한 것은 4백년동안 이어진 '해동화제'다.
매년 정월 대보름날 각 집집마다 섶나무 한 짐씩을 모아 21줄의 동아줄로 묶어 세웠다가 원(연못)앞에 달이 비칠 때 위에서부터 불을 붙여 완전히 태워 마을의 안녕을 비는 행사가 해동화제다.
해동화제 때 불을 붙이는 사람은 전년도에 아들을 낳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점도 행사가 얼마나 정성스레 치루어지는가를 가늠할 수 있다.
그러나 유구한 전통이 있는 해동화제가 아직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데다 광주시의 지원마저 열악 해 매년 주민들이 2천만원 정도의 기금을 십시일반 모아 행사를 치르고 있어 안타까운 현실이다.
광지원리 주민들의 바램 역시 소박하다.
그린벨트가 풀려 땅값이 올랐으면 하는 바램은 광지원리 주민들에겐 사치다.
단지, 우선 남한산성으로 연결되는 도로 주변이 정비 돼 남한산성을 찾는 외지인이 기분 좋게 여행을 즐겼으면 하는 것.
또, 학생들이 성남시 소재 학교로 통학하는데 있어 통학버스가 잘 연결돼 짧은 시간에 통학을 할 수 있데 되는 것.
이런 소박한 바램들을 갖고 있는 곳이 광지원리 주민들이다.
광지원리의 지명어는 지난 명종왕 시정 어느 선비가 집에서 시간을 보내다 밖에서 불기둥이 이는 것 같아 문을 열어보니 마치 '연못에서 빛이 일어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 그때부터 마을이름이 광지원(光池院)리라 했다.
1750년경에 이씨 성이 주를 이루었지만 그 이후로는 정씨, 권씨, 오씨, 강씨 등이 마을에 거주해 오기 시작했다.
마을주민이 원하던 광지원초등학교는 지난 1945년에 세워졌고, 1969년엔 단위농협이 결성 되는 기쁨을 누렸다.
이규웅 기자 aa5767@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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