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통일한 신라의 권위적 성(城) 추정
"잘 치석(治石)된 성돌을 이용하여 쌓은 이성산성의 성벽과..." "이성산성의 외벽은 모를 죽이고 배가 나오도록 다듬고 뒤를 뾰족하게 하여 마치 이빨모양(옥수수)처럼 생긴 성돌을 이용하여 성벽을 쌓았으며..."
백제의 성인가? 신라의 성인가?를 놓고 수수께끼의 성(城)으로 불리는 이성산성을 1986년부터 발굴해 온 한양대학교박물관의 6-7차 발굴조사 보고서에 기록된 이성산성의 성벽에 관한 표현 중 일부이다.
대부분의 성벽들이 직사각형의 각진 형태로 엇대어 쌓여져 있지만 이성산성은 옥수수알처럼 둥글게 다듬어진 성돌을 쌓아서 만든 성벽이다.
발굴팀의 6차 발굴조사에서 기저부를 포함한 면석부분이 드러나서 세상에 알려진 이성산성성돌의 크기는 가로 50Cm X 세로 20Cm 크기인데, 성벽이 축조 되었을 당시에는 전체적인 조형미가 탁월 하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약 2Km의 성 둘레를 곡선의 돌 들로 쌓아서 만든 성!
일부 학자들은 이성산성의 이러한 성벽에 대해서 당시 지배계급이 자신들의 존재를 과시하기 위한 권위적인 요소를 강조하기 위해서 성벽을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면 이 아름다운 2차 성벽은 삼국사기에 기록된 백제의 도읍지인 '하남위례성'의 성벽인가?
이에 대해서 하남시 문화재 전문위원 김세민 박사는 "이 2차 성벽은 백제의 성은 아니며, 신라시대의 성으로 추정하고 있다"면서 "이토록 아름답고 화려하게 성벽을 만들었다면, 그 시기는 전쟁이 잦은 시기가 아닌, 비교적 경제력 여력이 갖춰져 있고 사회.문화적으로 안정된 시기에 만들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김세민 박사는"이러한 여러가지 정황으로 봐서 2차 성벽의 옥수수형태 성돌은,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룬 이후로 추정되고 있으며, 전쟁 목적이 아닌, 군사용과 행정용으로 보고 있지만, 성돌의 형태는 국내에서 유일한 것으로 독보적이어서 가치가 매우 높다"고 말했다.
당시만해도 파격적인 둥근 형태의 성돌이 해발 209.8m의 이성산 산세를 타고 2Km를 굽이쳐 펼쳐진 모습은 장관이었을 것이다.
통일신라인들은 이 이성산성을 통해서 잔존해 있는 백제와 고구려 후손들에게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고 자신들의 우월성을 보이려고 하지 않았을까?
조선후기의 대표적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은 자신의 저서인 강역고(彊域考)에서 백제의 하남위례성을 현 하남시 춘궁동 일대로 추정한 바 있으며, 조선시대 홍경모는 저서 중정남한지(重訂南漢誌)에서 이성산성을 백제의 시조인 온조가 쌓은 성으로 보고 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2004년에는 한양대박물관팀에서 이성산성에 대한 11차 발굴작업에 들어가고 있지만 많은 역사학자들과 하남주민들이 기대하는 백제의 도읍지라는 명확한 유물과 유구가 나오려면 이성산성을 비롯해서 객산과 춘궁동일대에 해한 더 많은 연구와 발굴작업이 진행되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음호 부터는 지금까지 10차 발굴을 통해서 이성산성에서 발굴된 주요 유물과 유적에 대해서 소개 할 예정 입니다.
"잘 치석(治石)된 성돌을 이용하여 쌓은 이성산성의 성벽과..." "이성산성의 외벽은 모를 죽이고 배가 나오도록 다듬고 뒤를 뾰족하게 하여 마치 이빨모양(옥수수)처럼 생긴 성돌을 이용하여 성벽을 쌓았으며..."
백제의 성인가? 신라의 성인가?를 놓고 수수께끼의 성(城)으로 불리는 이성산성을 1986년부터 발굴해 온 한양대학교박물관의 6-7차 발굴조사 보고서에 기록된 이성산성의 성벽에 관한 표현 중 일부이다.
대부분의 성벽들이 직사각형의 각진 형태로 엇대어 쌓여져 있지만 이성산성은 옥수수알처럼 둥글게 다듬어진 성돌을 쌓아서 만든 성벽이다.
발굴팀의 6차 발굴조사에서 기저부를 포함한 면석부분이 드러나서 세상에 알려진 이성산성성돌의 크기는 가로 50Cm X 세로 20Cm 크기인데, 성벽이 축조 되었을 당시에는 전체적인 조형미가 탁월 하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약 2Km의 성 둘레를 곡선의 돌 들로 쌓아서 만든 성!
일부 학자들은 이성산성의 이러한 성벽에 대해서 당시 지배계급이 자신들의 존재를 과시하기 위한 권위적인 요소를 강조하기 위해서 성벽을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면 이 아름다운 2차 성벽은 삼국사기에 기록된 백제의 도읍지인 '하남위례성'의 성벽인가?
이에 대해서 하남시 문화재 전문위원 김세민 박사는 "이 2차 성벽은 백제의 성은 아니며, 신라시대의 성으로 추정하고 있다"면서 "이토록 아름답고 화려하게 성벽을 만들었다면, 그 시기는 전쟁이 잦은 시기가 아닌, 비교적 경제력 여력이 갖춰져 있고 사회.문화적으로 안정된 시기에 만들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김세민 박사는"이러한 여러가지 정황으로 봐서 2차 성벽의 옥수수형태 성돌은,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룬 이후로 추정되고 있으며, 전쟁 목적이 아닌, 군사용과 행정용으로 보고 있지만, 성돌의 형태는 국내에서 유일한 것으로 독보적이어서 가치가 매우 높다"고 말했다.
당시만해도 파격적인 둥근 형태의 성돌이 해발 209.8m의 이성산 산세를 타고 2Km를 굽이쳐 펼쳐진 모습은 장관이었을 것이다.
통일신라인들은 이 이성산성을 통해서 잔존해 있는 백제와 고구려 후손들에게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고 자신들의 우월성을 보이려고 하지 않았을까?
조선후기의 대표적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은 자신의 저서인 강역고(彊域考)에서 백제의 하남위례성을 현 하남시 춘궁동 일대로 추정한 바 있으며, 조선시대 홍경모는 저서 중정남한지(重訂南漢誌)에서 이성산성을 백제의 시조인 온조가 쌓은 성으로 보고 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2004년에는 한양대박물관팀에서 이성산성에 대한 11차 발굴작업에 들어가고 있지만 많은 역사학자들과 하남주민들이 기대하는 백제의 도읍지라는 명확한 유물과 유구가 나오려면 이성산성을 비롯해서 객산과 춘궁동일대에 해한 더 많은 연구와 발굴작업이 진행되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음호 부터는 지금까지 10차 발굴을 통해서 이성산성에서 발굴된 주요 유물과 유적에 대해서 소개 할 예정 입니다.
이공원 기자 lee@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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