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100년전인 1904년 2월 8일은 대한제국을 일본의 식민지로 만들게 된 결정적 사건인 ‘러일전쟁’이 일어 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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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뉴욕에 있는 P. F. COLLIER & Son 이라는 출판사가 1905년에 출판한 이 화보집의 제목은 Collier’s photographic Record of the Russo - Japaness War 이다. | ||
이 처럼 ‘러일전쟁’은 한국의 역사에 크나 큰 사건으로 인식되고 있는데, 이 ‘러일전쟁’ 기간중에 미국의 한 출판사가 찍은 러일전쟁 화보집이 국내에서 최초로 발견돼서 교차로저널이 최초 독점 게재 한다.
미국 뉴욕에 있는 P. F. COLLIER & Son 이라는 출판사가 1905년에 출판한 이 화보집의 제목은 <Collier’s photographic Record of the Russo - Japaness War> 이다.
모두 흑백 사진인 이 화보집은 종군사진작가인 James H . HARE씨를 비롯해서 총 7명의 사진작가가 촬영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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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물포 앞바다에서 일본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자폭해 침몰한 러시아해군 <바략>號의 모습 | ||
러시아의 남진정책과 자신들의 제국주의 야심이 충돌하자 전쟁을 결심한 일본군은 1904년2월 8일 제물포 앞바다에 있던 러시아해군 바략호와 카례예츠호, 두 군함을 기습공격하자 이들 러시아 군함은 자폭했다.
또한 같은 날 일본군은 러시아해군이 대거 집결해 있던 뤼순(여순)군항도 기습공격해서 초반 승세를 굳혔으며, 계속되는 육상전투에서도 승리를 거두고, 결정적으로는 1905년 5월 대한해협에서 러시아 해군제독 로제스트벤스키가 이끄는 발틱함대와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가 이끄는 일본 연합함대가 대규모 해상전투를 벌였고, 이 전투에서 러시아가 자랑하던 세계최강이라던 발틱함대는 궤멸했으며 전쟁은 일본의 승리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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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4년 2월 8일 일본해군의 기습공격으로 뤼순(여순)항에서 침몰해 있는 러시아해군 길약號의 모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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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4년 2월 8일 일본해군의 기습공격으로 뤼순(여순)항에서 침몰해 있는 러시아해군 레비쟌號의 모습 | ||
같은 해 9월에 미국 포츠머스에서 체결 된 ‘포츠머스 조약 2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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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 책자를 최초 공개한 하남시 문화원 윤종준 사무국장 | ||
이로서 한국의 운명은 일본의 손안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전쟁기록이 뛰어난 기량과 용기를 갖춘 7명의 종군사진기자들에 의해서 충실히 기록되었으며 이 책에 담겨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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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투를 지켜보는 일본군 쿠로키 제독과 그의 참모들. | ||
윤국장은 “러일전쟁 100주년을 맞아서 일본과 러시아, 그리고 한국의 관련 학계와 전문가들이 각종 세미나와 연구발표를 잇달아 발표하고 있는데, 이런 단체와 전문가들과 상의해서 이 자료의 활용방안을 모색해 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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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뤼순함략을 목표로 한 <목텐전투>를 마치고 집결해 있는 일본군 쿠로키사단의 모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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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일전쟁 개전 1년후인
1905년 9월에 미국 포츠머스에서 체결 된 포츠머스 조약 2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러시아제국은 일본이 한국에서 정치적·군사적·경제적으로 최고의 권익을 갖고 있음을 인정할 뿐 아니라, 일본이 한국에서 필요하다고 보여지는 지도·보호·통제 조치를 취하는 데 방해하거나 간섭에 나서지 않는다 이로서 한국의 운명은 일본의 손안에 놓이게 된 것이다. | ||
이공원 기자 lee@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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