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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남시 산곡초등학교 출신인 유영목 전 평택세관장 | ||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은 현대그룹 이었지만 6개월 만에 철도청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당시 철도청장이 '국립교통고등학교'에서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서도 장학금을 받은 사람이 민간기업으로 취업을 했다고 해서 정식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1960년대의 상황에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상황 이었기에, 유영목씨는 철도청 공무원생활을 하면서 틈틈히 공부를 계속해서 1969년 재경고시에 도전해서 당당히 합격했다.
1970년 4월 당시 경제기획원에 발령을 받은 후, 경제기획국과 예산실, 공정거래실을 거쳤으며, 이후 부처교류 방침에 따라서 재정경제부 관세청으로 자리를 옮겨서 조사국, 기획관리실 기획예산담당, 동해세관장, 구로세관장, 조사국 마약과장, 평택세관장을 역임했다.
경제기획원 근무시에 당시 국민 1인당 GNP가 170달러 였으나 제3차 5○○○ 계획을 수립하는 핵심 역활을 담당했는데 주로 인구,주택,교육개발,지역계획등의 장기계획수립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73년도에는 IBRD차관으로 포항제철에 연산 560만톤 생산능력을 갖춘 생산시설을 위한 차관도입을 성사 시키기도 했다.
또한 고리원전 1.2.3호기를 도입하는 과정에서는 미국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캐나다와 프랑스의 기술도입을 이끌어 내서 엄청난 외화 절감과 함께 기술이전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1988년 동해세관장 근무시에는 중국산 참깨밀수사건을 직접 담당해 60명의 관련자를 구속시키기도 했다.
"현대로 갔다고 소송을 제기했던 당시 이훈섭 철도청장이 내 인생을 바꿔 났다"고 농담을 던지는 유영목 감사는 "현대에 그대로 있었다면 건설회사를 운영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면서 미소 지었다.
고향인 하남에는 친동생이 79살 된 모친을 모시고 있고 부친의 묘도 있어서, 한 달에 2~3차례는 고향을 찾는 편이다.
"하남시가 장기 발전 하려면 창고형의 건축물이 난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하는 유감사는 "하남은 서울과 근접해 있으므로 서울 사람들이 찾을 수 있는 계획성 있는 도시발전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용산미군기지 이전 등이 논의가 있는 만큼, 하남에 있는 미군부대의 변동에 대해서도 주시해서 장기계획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며, 하남시가 독자적인 시로 발전 하려면 경찰서, 교육청, 세무서등의 유치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공원 기자 lee@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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