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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산신령께 비나리

금강산 산신령께 비나리

금강산엘 다녀왔다. 이번이 네 번째다. 갈 때마다 정말 많이 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5년전 첫 여행은 정말 긴장의 연속이었다. 북측 사람들은 말을 건넬 수 없을 정도로 표정이 굳어 있었고,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듯 했다.

금강산이 상품이라기보다 바로 그런 북측사람들, 그런 분위기가 상품이 되기 충분했다.

빨간 뿔이 달린줄 알았던 그 사람들을 만나보는 자체가, 반세기 동안 밟지 못했던 그 땅, 그 살벌한 분위기를 접하는 그 자체가 관심이자 관광 상품이었던 것이다.

두 번째 방문에서는 북측 환경관리원들과 웃으며 인사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엔 맨발에 인민화 차림으로 ‘우리식대로 산다’는 구호와 함께 버티고 서 있던 북측 안내원들도 갖춰 입고, 신고 변해 있었다.

세 번째는 아주 활발한 토론을 할 수 있었고 오히려 북측 사람들이 우리에게 묻는 대화의 역전현상이 일어났다.

우리의 정치상황에 많은 관심을 보였고, 많이 알고 있었다. 아디다스 티셔츠를 입고, 남쪽 상표의 운동화를 뽐내하는 북측의 환경관리원은 세 번째 금강산 여행에서 지울 수 없는 기억이 되었다.

그리고 그때가 바로 서해교전이 일어나던 때였다.

네 번째 여행은 육로관광이었다. 남북을 가로막은 군사분계선은 다 낡고 녹슬은, 툭 차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작은 푯말 하나가가 다였다.

미쳐 닦이지 않은 임시도로 고성에서 한 시간 남짓 가니 온정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럴수가... 함께 차에 타고 가는 사람들 모두가 기막혀 하고 있었다. 조선족 운전기사, 호텔의 조선족 직원들 모두 세련되어져 있었다.

물론 남측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5년 전과는 하늘과 땅 차이라 할까! ‘한 사회가 이렇게 변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변한 것이 어디 외형뿐일까? 호텔과 차에서 두 세 건의 분실 사고가 있었다.

그 외에도 조심스러워 밝힐 수 없는 일까지 이전까지는 신경도 쓰지 않았던 돈과 물질에 얽힌 문제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강건한 정신력 하나로 버티며, 그 사상으로 무장되어 있던 그들의 마음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아! 이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아니다 현상은 현상일 뿐 그냥 그대로 받으면 된다.

마음이 잠깐 동안 복잡해 졌다. 그리고 내내 편치 않았다. 규칙을 어기고 벌금을 팁처럼 생각하며 내고 마는 남측관광객들의 무례함. 배려 없이 툭툭 내뱉는 말 속에서 드러나는 천박한 우월의식, 돈이건 물건이건 아무 생각 없이 평소 버릇대로 쥐어주는 행태가 5년이나 계속되었으니 그들의 균열을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나 역시 진중하지 못한 것이리라. 북측이 변화하기를 바라면서 그 변화의 모습, 그 과정을 한번도 구체적으로 그려보지 못했던 것이다.

차떼기 수법의 자금수수, 입만 열면 억억대는 남측의 구성원으로 북측 그들의 흔들림을 논할 자격이 애당초 있을 수 없는 것 아닌가! 대북지원이 국가보안법위반이며, 상호주의를 주장하고, 금강산 관광지원 불가를 논하며 남남갈등을 일으키는 지금 이 시간에도 천하명산 금강산 한 자락은 변화의 산통으로 꿈틀거리며 아파하고 있다.

바라건대 변화의 과정에서 남측사람에게서 옮은 천박한 것들은 빨리 겪어 버리고 자본주의의 순기능만을 취해서 얼른 성숙되기를... 그것이 금강산 산신령께 빌고 비는 마음이요 내 소박한 애국심의 일단이다.

교차로저널  kocus@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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