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가을도 저물어 가고, 을씨년스런 바람에 낙엽이 흩날리면 무엇인가를 또 잃어가고 있구나 하는 감회를 금할 수 없다.
그칠 듯 싶다가도 다시 뿌리고, 굵어질 듯 보이다가도 멈추고 마는 늦가을의 빗줄기가 이미 우리의 가슴을 흠뿍 적셔 놓았다.
모든 현상에는 기승전결(起承轉結)이 있고, 시작과 끝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느끼지 못할 때가 많은 것 같다.
너무 각박하고 혼란스러운 현실에 시달리다가 보니 우리의 정체성을 잊어버리게 된 것이다.
얼마전, TV에서 1960년대 초기의 흑백영화
'마부'(馬夫)를 시청한 적이 있다. 그 시절은 너도 나도 어렵게 사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가족·친구·인간의 도리 등을 소중히 여기고 서로
애환을 나누던 '따뜻함'이 있었다.
시간의 흐름을 어쩔 수 없어, 그 영화에 나왔던 인기 '스타'들은 고인(故人)이 되었거나 노인으로 변모하였고, 그 우중충하던 서울 시가지의 모습도 이제 흔적이 없어졌다.
욕심에 눈이 먼 우리 군상들이 별의 별 해프닝을 벌이며 발버둥치고 있지만, 4-50년이 흘러가면 마부에 나온 영화배우를 처럼 그 무대에서 사라지는 필연을 막지 못한다.
지난 주, 각 신문 사회면에는 2건의 기사가 실렸었다.
하나는, 수백억원씩을 동원하여 강남의 타워팰리스 등 주상복합 96채를 '싹쓸이'하고, 대전의 재건축 분양권 142개를 매집하여 거액의 차익을 쓸어 담았다는 악덕 부동산투기업자들의 이야기였다.
다른 하나는, 지난달 중순 부산대에 305억원을 기부하여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주)태양 송금조(79)회장이 이번에는 1천억원 규모의 사재를 털어 교육문화재단을 설립키로 했다는 '아름다운 손'에 관한 내용이었다.
같은 시대를 살고 같은 돈을 쓰면서도, 어떤 부류는 탈세를 밥 먹듯이 하며 집없는 소시민들의 주머니를 악랄하게 털어가는 수단으로 쓰는가 하면, 다른 분은 평생동안 근검·절약으로 모은 '금쪽'같은 거액을 아낌없이 사회에 환원하고 있으니, 일비일희(一悲一喜)할 수 밖에 없었다.
작금에 걸쳐 벌어지고 있는 대선자금과 정치인의 비리에 과한 검찰수사와 그에 대응하는 정치권의 양태 또한 우리를 처연한 감정에 빠뜨린다.
대한민국의 정치와 경제를 마비시키고 있는 '암세포'들에 대한 검찰의 수술이 성공리에 마칠 수 있도록 후원하고 기대하는 것이 이 나라의 국민이 취해야 할 태도이다.
그러나 정치권은 지난 11일 「노무현 대통령 측근비리 규명 특검법」을 부리나케 통과시켜 검찰수사의 초점을 흐려 놓으려는 저의를 내보였다.
그들은 국정이 방향을 잃고 표류를 하든 말든, 국민경제가 도탄에 빠지든 말든 일단 개인의 영달과 당리당략을 우선으로 하는 '정치꾼집단'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진정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서로 멱살을 잡고 싸운다면 우리는 환호와 박수를 보내지만, '더러운 손'들로 옥신각신하는 그들의 추태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지난 8일 오후, 서울 지하철 4호선 충무로역 구내에서 지하철 선로에 추락한 문모씨(71)를 구출한 '의인' 박남이씨(32)는 문모씨측의 사례를 거부하고 몸을 숨겼다고 한다.
"사람의 목숨이 걸린 급박한 상황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했을 것이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대단한 일을 한 듯 평가되는 것이 부담스러워 언론 노출을 자제했다"는 것이다.
어느 시민이 모 변론기관에 "언론에서는 말끝마다 사회지도층이니 뭐니 떠드는데, 우리나라에 지도층이 어디 있느냐"고 항의하였다고 한다.
도덕적으로 존경받지 못하고, 이 나라와 사회에 봉사한 적이 없을 뿐더러 당연히 "하여야 할 일"을 팽개치고 있다면 자리나 차지하고 있을 뿐이지 사회지도층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나라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외면하고 있는 자들이 큰 소리 치고 있고, 할 일을 하면서도 겸손해 하는 이들은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이상한' 풍토가 만연하고 있다.
또다시, 서울 시내 한 복판에서 수만명의 시위대가 화염병을 내던지고 각목을 휘둘러 수십여명이 부상 당하는 광경이 연출되고 있어도 우리는 묵묵부답으로 가슴앓이를 할 뿐이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尺度)'라고 프로타고라스가 말했던가.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상황의 원천적인 책임은 우리들 모두에게 있는 것이다.
'마부'의 시대, 가난하지만 서로 위하고 격려하며 어려움을 극복해가던 그들의 '따뜻함'이 더욱 그립기만 하다.
눈앞에 보이고 있는 이 현상들이 고착되어 천년 만년 지속될 것이라고 착각하면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낡은 영상은 사라지고 새로운 영상물이 무대위에 펼쳐지는 것이 자연의 섭리요, 역사의 흐름인 것이다.
보기 흉한 모습으로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것인지를 우리는 깨닫기로 하자.
누구의 탓이 아니라 내탓이요. 우리의 탓이라는 마음가짐으로 구태의연하고 삐걱거리는 낡은 필름은 수거하여 역사의 창고 한 구석에 내던지고, 사람의 냄새가 나는 새로운 영상물이 이 땅위에 펼쳐지도록 결단하는 것이야말로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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