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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남시 감북동 가무나리가 고향인 서울고등검찰청 박영렬검사가 모교인 하남서부초등학교 교정을 찾았다. | ||
하남시 감북동 가무나리가 고향인 서울고등검찰청 박영렬 부장검사(48)의 어린시절에 얽힌 추억이다.
어머니의 말대로 그 어린 소년은 성장해서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1983년 서울지검 동부지청 검사를 시작으로 중견 법조인으로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
"어려서는 동네 골목대장이었는데, 동급생과 서부초등학교 앞에 있는 방울나무 밑에서 온 동네 또래들이 둥그렇게 모인 가운데 대결을 벌였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하는 박검사의 유년시절은 노는 일과 공부를 다 잘하는 아이로 소문나 있었다.
박검사의 초등학교 시절, 전교 1등을 할 때마다 어머니는 시루떡을 만들어서 안촌에 사시는 선생님댁에 전달해 주었고 "우리 아들을 잘 가르쳐 주셔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고 감사인사를 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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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방울나무를 배경으로 한 박영렬검사 | ||
2001년 신문과 방송에서 널리 보도 된 '홍콩 수지김 살해사건'은 1987년 윤태식씨가 홍콩거주 김옥분을 살해하고 이를 감추기 위해서 북한의 납치공작이 있었다고 거짓말을 해서 살인혐의를 벗어나 진실이 묻혀질 듯 했으나, 당시 주임부장검사였던 박검사에 의해서 사건의 전모가 밝혀져서 윤씨는 살인,사기등으로 구속된 사건이다.
이 사건은 MBC의 '죄와벌'프로그램과 KBS의 '시민프로젝트'에서도 단독 스페셜 프로그램으로 방영돼서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검사로서 잊혀지지 않는 사건은 1983년경 강동구 하일동의 심씨 집성촌에 거주하는 수백가구 주민과 이전 토지소유자의 아들간의 분쟁으로 시작된 형사소송을 지목했다.
이전 토지소유자의 아들은, 자신의 부친이 1957년에 작고했으므로, 1958년도에 자신의 부친과 작성된 토지매매계약서를 가지고 있는 수백가구의 부동산 권리는 무효이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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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해결의 핵심은 죽은 이전토지소유자가 몇 년도에 죽었는가? 하는것 이였다.
아들은 자신의 친매형을 증인으로 내세워서 1957년에 부친이 사망했다고 일관되게 주장하는 상태에서 박검사가 찾아낸 결정적인 단서는, 작고한 부친의 묘지가 당시 국가에서 관리하던 망우리공동묘지에 있다는 점을 확인한 후, 묘지관련 서류를 영구보존하고 있던 동대문구청의 관련 자료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 자료에는 분명히 1959년도에 묘지가 조성됐음이 확인됐고 이를 제시하자 그동안 거짓말로 부동산을 가로채려던 아들과 친매형은 마침내 고개를 떨구고 무릎을 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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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적성에 맞고 검사가 할 일이 많은 자리이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동안 사회개방과 경제성장의 그늘 속에서 가려져있던 가치관을 확립하고, 올바른 사람들이 편안해 하는 사회의 공평한 룰을 만들어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다.
박검사는 한달에 2~3차례는 고향인 하남시를 찾는다. 모친이 생존해 계시고 밀양박씨 규정공파 14대를 이어온 일가친족이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온가족이 함께 들르고 있다.
"하남시가 그린벨트로 묶여서 인지, 어릴적 고향모습이 크게 훼손되지 않아서 다행이다"고 말하지만 "역사도시인 하남시 곳곳에 무질서하게 들어 선 축사를 보면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틈틈히 시간을 쪼개서 집 근처 양재천을 산책하거나 등산과 반신욕으로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박검사의 생활신조를 묻자, 안중근 의사가 1909년 하얼삔에서 자신의 생명을 내건 의로운 일을 행한 후, 여순감옥에서 사형이 집행되기 1개월 전에 쓴 글귀로 대신했다.
'담박명지 영정치원(澹泊明志 寧靜致遠)
욕심 없고 맑아야만 뜻을 바르게 할 수 있고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해야 멀리 갈 수 있다.
이공원 기자 lee@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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