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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 최초의 일본유학생이자 미국유학생인 유길준선생은‘대한문전(大韓文典 .국어문법서)’, '서유견문(西遊見聞)'등이 다양한 저서를 남기기도 했다. | ||
문화관광부는 2002년도에 다음해 문화인물을 선정한 후 해당 시군에 공문을 보내서, 2002년 8월말까지 문화인물 관련 기념사업계획서 제출을 요청 했었는데, 이 계획서상에는 ‘출판 및 학술행사(전기·저작물발간, 세미나, 강연회, 학술대회 등), 전시, 공연, 기념물·홍보물 제작 배포, 유적지 답사, 기타 추모행사 등을 추진하는 경우 총 예산의 50%를 국고에서 지원한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하남시는 문화관광부가 정한 기한내에는 구체적인 기념사업안을 제출하지 못해서 예산지원에는 미치지 못했으며, 이후 금년도 시예산 편성시 유길준 학술세미나 비용으로 3천만원의 예산액을 배정했지만 이 또한 시의회에서 예산을 전액 삭감해서 본예산에 포함되지 못했다.
하남시에서는 지난달 말, 하남시 2차 추경예산에 3천만원을 상정해 논 상태이지만, 구체적인 세부안이 없고 ‘이달의 문화인물’ 시기를 불과 1개월을 남겨 둔 상태에서 제대로 된 행사는 기대 할 수도 없다는 것이 지역문화계 인사들의 평이다.
지난 1994년 조선일보와 국립중앙박물관이 ‘유길준과 개화의 꿈’을 개최해서 유길준관련 연구에 첫 단추를 끼워서 국민들의 관심을 모았었다.
그후 금년 9월 9일에는 유길준이 미국유학시 맺은 인연으로 미국 매사추세츠주 세일럼(Salem)시 피바디 에섹스(Peabody Essex) 박물관에 ‘유길준전시실’이 신설된 것이 조선일보를 비롯한 국내외 유력신문등에 대서특필되는등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비해서 하남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어서 지역문화 발굴계승에 대한 의지부족과 함께 문화기획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에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구당(矩堂) 유길준(兪吉濬) 선생 소개-
본관이 기계(杞溪)인 유길준 선생은 1856년 서울 계동에서 출생했으나, 1866년 병인양요가 일어나자 가족과 함께 경기도 광주군 동부면 덕풍리(현 하남시 덕풍동)로 피난해서 3년간 거주했다.
1870년 후일 개화파의 주도세력이 된 김옥균,박영효,서광범,김윤식등과 함께 박규수의 문하에서 실학사상을 배웠다.
1881년 스승인 박규수의 권유로 일본신사유람단에 참가해서 우리나라 최초의 일본유학생이 되었다.
1883년 귀국했다가 민영익의 수행원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매사추세츠주 세일럼(Salem)시 피바디 에섹스(Peabody Essex)
박물관장인 모스(Morse.E.S.)의 개인지도를 받은 후, 가을에 덤버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우리나라 최초의 미국유학생이
됐다.

▲ 구당 유길준선생의 친필
영문편지
이후 우여곡절끝에 귀국했으나 개화파로 몰려서 가택연금을 당했으나, 그 기간중에 자신이미국과 유럽등지를 돌면서 보고 느낀 점을 쓴 ‘서유견문(西遊見聞)’을 집필해서 출판하기도 했다.
이후 갑오개혁과 아관파천등의 격변기를 거치면서 일본망명과 재귀국을 하게 되는등 구한말의 개혁파세력의 핵심적 이론의 정립자로 알려져 있다.
귀국후 흥사단 활동에도 참여했으며, 계산학교(桂山學校)를 설립하기도 했다. 1910년에 대한제국의 태극대수장을 수여했으며 한일합방뒤 일본정부에서 주는 남작칭호를 거절하기도했다.
주요저서로 ‘대한문전(大韓文典 .국어문법서)’, ‘서유견문’ ‘평화광복책(平和光復策)’ ‘이태리
독립전사(伊太利獨立戰史)’ ‘파란쇠망전사(波蘭衰亡戰史)’ ‘구당서간집(矩堂書簡集)’등이
있다.
이공원 기자 lee@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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