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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년간 계속된 조선배제작 최고봉윗배알미 태생 손낙기옹, 맥 끊길 듯
   
 
  ▲ 조선배 제작의 장인 손낙기옹이 배알미에 있는 제작장소에서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나의 할아버지는 목상(木商)으로 시골에서 산을 사서 벌채를 한 다음 한강을 따라서 나무를 운반해서 마포나루등지에서 팔았었지"

하남시 윗배알미가 고향으로 평생을 조선배와 고선박 만들기에 몸 바쳐온 손낙기옹(74.하남시 덕풍2동)의 설명이다.

손옹의 부친은 할아버지 밑에서 나무를 받아서 배로 운반하는 일을 했다. 이때 사용되던 배들은 배알미에사는 박성문씨(작고)가 주로 만들었는데, 손옹은 박씨의 배 제작을 어깨너머로 지켜보면서 배와의 인연을 시작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전수하는 개념이 없었지. 다만, 배 만드는 일이 일당이 많아서 먹고 사는데 좋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지"

손옹이 처음 자신의 배를 만든 것은 군 제대를 마친 1956년도로 당시 27세의 혈기 왕성한 청년기었다.
'남이 안 도와주고 내 스스로 만드는 배'를 첫 진수한 이후 48년간을 배만 만드는 장인의 길을 걸어온 것이다.

손옹이 가장 많이 만든 배는 나룻배로 10여명이 타는 크기인데 지금은 뜸 하지만 팔당댐이 막히면서 많은 수요가 있었다. 그 다음으로 2인승 낚시배이며, 1인승 낚시배도 다음순서에 들어 간다고 말한다.

   
▲ 손낙기옹이 직접 제작한 조선배의 모습
"조선배들은 배알미에서 서풍인 하늬바람을 타고 남한강을 거슬러 올라갔으며, 동풍인 높새바람을 등에지고 한강을 따라 내려왔고, 바람이 없을 때는 배에서 줄을 늘려서 땅으로 보낸후, 땅에서 사람이 끌어 당기고 배에서는 삿대질을 했다"고 지난날을 회상했다.

마포에서는 새우젖과 소금, 건어물을 많이 실었고 그 대가로 강원도등지에서는 목재와 숯등을 실어 날랐다고 한다.

손낙기옹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충실한 자료확보와 명확한 기억력으로 자신의 기술을 모두 문서화해서 공개하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 그동안 자신이 만든 거룻배를 비롯한 배들의 제작과정과 배제작과 관련한 살아있는 문헌을 직접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그가 쓴 '편수의 거룻배 짓는 격식'에 나와있는 거룻배에 관한 소개를 보면, "거룻배는 소나무로 만드는데, 소나무도 춘양목,적송,해송,무송으로 나뉘고 그중에서 춘양목을 제일로 치는데 나무수령은 60~100년이상 돼야한다" "그중에서도 물속에서 오래 흘러온 나무를 수상목(水上木)이라해서 배를 짓거나 집을 지을 때 최상품으로 쳐 줬다"

   
"거룻배의 종류에는 시선,당도리선,시회선,참운선,운염선,대변선,시노선,광선으로 나뉘는데 이들 배의 특징들이 있으므로 이를 감안해서 배를 만들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조선배 장인이다"고 말했다.
2003년 6월에는 경희대민속한연구소가 주최한 '남한강과 중원문화의 만남'이라는 종합학술대회에서는 '돛배와 함께 한 나의 삶' 이라는 주제강연을  진행할 정도로 손옹의 진가는 이미 전국에 잘 알려져 있다.

매우 아쉽게도 손옹의 48년 조선배만들기의 숨은 비결은 하남에서는 맥이 끊길 것 같다. 그의 독보적인 조선배제작 능력은 여러가지 이유등으로 빛을 보지 못하고 전수돼지 않고있기 때문이다.

(주요경력)
-2000년 국립민속박물관 황포돛배 제작
-2001년 한국민속촌 황포돛배 제작
-2002년 MBC어사 박문수 황포돛배 제작(충주호 진수)
-2002년 KBS드라마 토지, 전통배 2척제작
-2003년 여주군청 주관 조포나루 황포돛배 제작
-2003년 현재 임진강에서 돛배 2척 제작중

   
▲ 손낙기옹이 직접 제작한 조선배의 모습

이공원 기자  lee@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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