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독립운동가 고 김재진(金載珍)옹의 며누리 김인화씨와 오래된 신문과 역사자료를 뒤적여서 조부의 독립운동사실을 입증한 김인화씨의 아들 김의관씨의 모습. | ||
![]() |
||
"시아버님은 인격자였지요. 젊잖았고 약주 드시고 집에오면 혼자 엎드려서 술깰때까지 일어나지 않았지요"
돌아가신지 53년만에 독립유공자로 인정받고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은 독립운동가 고 김재진(金載珍)옹의 며느리인 김인화(여.83.하남시 덕풍2동 356-7번지)씨의 증언이다.
김인화씨는 독립운동가 고 김재진(金載珍)옹의 외아들인 김시환씨(6.25때 행방불명으로 사망추정)의 부인으로 13살때 시집을 왔다. 그때 남편의 나이는 12살.
80이 넘은 나이지만 시아버지인 독립운동가 고 김재진(金載珍)옹에 대한 기억과 과거회상을 매우 또렷하게 증언했다.
일제치하에서 1921년 '독립정의단사건'으로 8년간의 감옥살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시아버지는 재판과정과 고문받은 사실들을 자식과 며누리에게 전하며 자신의 나라사랑을 전했다고 한다.
일본경찰이 고문을 하면서 "한국은 이제 일본의 동생나라가 됐는데, 형의 말을 잘 들어야 돼지 않는가?"라고 비꼬자 시아버지는 "조선의 역사가 일본의 역사보다 오래이므로 두 나라중 누가 형인가?"라고 반문해서 거의 실신 상태까지 가는 고문을 받았다는 것이다.
하도 매를 맞다보니 나중에는 매가 살갖에 와 닿는것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재판정에서 일본인 판사가 "피고는 부자들에게 권총으로 협박해서 강도짓을 했는가?"라고 물으면 "독립을 위해서 써 달라고 스스로 내준 돈을 받았을 뿐이다. 내가 강도라면 우리나라를 빼앗은 일본은 강도국이고 우리를 재판하는 당신이야 말로 강도로다"라고 맞 받았다.
또한 재판장이 "독립운동은 누가 시켜서 했는가?"라고 물으면 "새벽에 닭이 누가 울라고 시키지 않아도 울 듯이 때가 돼서 했노라"라고 답했다고 전했다.
같이 살고있는 외아들 김의관씨(59.하남시 덕풍2동 356-7번지.대덕수퍼 운영중)의 열심과 수고로 시아버지의 명예를 되찾았다면서 눈물을 흘리는 김인화씨는 "돌아가신 시아버지가 이제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다"고 흐느꼈다.
이공원 기자 lee@kocus.com
<저작권자 © 교차로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하남] "3호선 첫 삽도 안 떴는데...감일에 또 6,500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