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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변의 올림픽대교 남단끝에 위치한 서울아산병원에는 검정색의 거대한 물결이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검정색 승용차와 검정색차림의 조문객들, 암울한 표정의 사람들...
고 정몽헌 회장의 영결식이 진행된 서울아산병원에는 3천여명의 사회 각계각층 인사들과 지인,친척들이 모인 가운데 고인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 보았으며, 병원인근 송파구 주민 1천여명도 병원근처에 모여서 영결식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오전 7시 30분부터 시작된 발인제가 시작되자 검정색 정장차림의 현대그룹 관계자들은 침울한 표정으로 비극적으로 자신의 생을 마감한 고 정몽헌 회장의 영정에 시선을 집중했다.
곧 이어서 영결식장으로 이동하기 위해서 고인의 영구를 싣은 검정색 대형캐딜락운구차가 영결식장으로 들어 섰으며, 사전에 입장이 허용된 1천여명의 내빈들과 친척들이 보는 가운데 영결식이 시작됐다.
고인의 유언장에서 특별히 당부했던 두딸 지이와 영이씨는 영원히 다시볼수 없는 고인을 생각하며 영결식 내내 복받치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흐느껴서 주위사람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다.
우인대표로 참석한 도울 김용옥 선생은 추모사를 통해서 "정몽헌은 '대인의 꿈', 분단의 현실속에서 통일된 나라를 꿈꾸며 살았다"고 말했다.
식순에 따라 서울 아산병원에서 영결식을 마친 고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의 운구차량은 뒤따라오는 현대측 대형버스 10여대와 함께 88대로를 달려서 오전 9시 50분, 하남시 창우동 선영에 도착했다.
미리 도착한 현대그룹직원들이 도열한 가운데 운구차량은 선영입구를 지나 약 1백여미터 떨어진 입관장소로 서서히 이동했고, 그 뒤를 미망인 현정은씨와 아들 정영선군,딸 정지이,정영이씨가 하얀 소복을 입고 뒤 따랐다.
그 뒤로는 정몽구(현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씨와 정몽준 회장을 비롯한 형제들이 비통한 표정으로 걸어서 이동했다.
운구차가 멈춰서자 현대직원들인 운구조가 고인의 영구를 차에서 내려서, 수십년된 잣나무가 좌우로 줄 지어 선 숲길을 약 30여미터 올라갔다.
아무도 이 침묵을 깨지 못하고 말없이 고인의 뒤를 따를 뿐 이었다.
그리고 하관이 되고 아들 정영선군이 뿌린 흙이 관 위에 뿌려지자 유가족들은 통곡했고, 수많은 사연과 비밀을 안고 떠나는 고 정몽헌회장은 더 이상 빛을 보지 못하는 자신만의 어둠의 세계속으로 묻혀갔다.
(하남시 창우동 선영 주변모습)
평소에는 굳게 닫힌 선영입구 철문은 활짝 펼쳐져 있었고,
기자들을 위한 프레스 센터와 안내센터가 깔끔히 설치되어서 편의를 제공하고 있었으며, 대형천막을 곳곳에 설치해서 간단한 음료를 선채로
마실수 있도록 했다.
몇일전까지 내린 비로 진흙탕이던 선영앞 공터주차장은 현대건설측에서 대형 중기를 동원해서 밤샘 작업을 마쳐서 3개의 대형주차장으로 말끔히 단장했다.
이들 주차장에는 에쿠우스와 오피러스등의 대형승용차만 300여대가 동시에 몰렸지만, 사전에 잘 훈련된 현대측 인력에 의해서 큰 문제없이 주차가 이뤄졌다.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5백여명의 하남시 주민들의 도로와 주변 건물 옥사에 몰려서 경비인력들이 진땀을 빼고 있었으며, 이교범 하남시장과 광주경찰서 관계자들도 선영에 참석해서 애도의 뜻을 표했다.
* 관련사진: <포토뉴스>코너에서 추가되어 있음.
<고 정몽헌(鄭夢憲) 회장>
생년월일 : 1948년 9월 14일
학력 : 연세대학교 국문학과, 명예경영학박사
<약력>
1975년 현대중공업 차장
1977년 현대건설 이사
1981년 현대상선 대표이사사장
1992년 현대전자산업 대표이사회장
1996년 현대그룹 부회장
2000년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
2002년 현대상선 비상임이사
가족사항 : 배우자 현정은, 1남 2녀
이공원 기자 lee@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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