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교육청이 관할 하고 있는 40여 학교 중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학교가 바로 남한산 초등학교다. 하지만 남한산 초등학교를 설명하는데 역사와 전통만을 강조한다면 반절의 반도 알지 못한다.
남한산 초등학교는 2000년도 후반 학생의 수가 26명까지 줄어드는 소규모 학교의 전형적인 절차를 밟아 왔다. 하지만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 시켜 지금은 알찬 교육 내용과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어울어진 학교로 변화했다.
역사와 졸업생
1912년 광주보통학교로 출발, 남한산 공립 보통 학교, 남한산 심상소학교등으로 불리다 1941년 남한산 국민학교로 변경된다. 6.25동란 때 폭격으로 교사가 불에 타 1951년 6월 66명의 학생으로 다시 개교하게 된다. 1996년 지금의 이름인 남한산초등학교로 변경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남한산 초등학교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해공 신익희(1892~1956) 선생이 있다. 한평생 조국을 위해 헌신한 민족 지도자 이며 독립을 위해 노력한 정치가 이다.
이밖에도 70년대 인물인 남덕우 부총리와 축구국가대표 출신인 서정원 선수가 남한산 초등학교의 선배들이다.
단점을 장점으로
2000년 남한산초등학교의 학생 수는 불과 26명으로 폐교의 위험에 몰리게 됐다. 하지만 지역 주민, 학부모, 지역인사 그리고 교육계의 인사들이 뜻을 모아 학교 살리기에 나섰다. ‘전입학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학생수를 늘리고 새로운 학교 만들기의 토의와 협의를 거쳐 문제점을 하나하나 고쳐 가기 시작 했다.
또 학교측에서도 새로운 교사의 영입과 교육프로그램의 개발, 전입 학생과 학부모에 대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주변의 우려와 기대 속에 2001년 3월 남한산초등학교는 제 2의 개교를 맞이하게 된다.
학생이 즐거운 학교
남한산 초교의 수업 시간은 80분이다. 쉬는 시간도 30분이나 된다. 교과 시간의 파격은 아이들이 더 공부에 열중하고 놀이에 더 열중하라는 학교측의 배려다. 80분의 수업시간 중 교과 수업과 놀이가 병행 된다. 학생들은 아름다운 주변 환경을 벗삼아 열심히 공부 할 수 있다.
교육청이 주관하는 체험 학습 프로그램이 시행되기 이전인 2001년부터 토요일이면 학생들은 연극, 음악회, 박물관 견학등 체험학습을 시행하고 있다.
또 6월에는 숲속에서 수업이 진행 되는 ‘숲속 학교’, 방학기간을 이용해 10개 정도의 계절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가을에 ‘남한산성 문화제’에 참가도 하고 있다.
학교 공통체 만들기
학교의 자치적 운영을 위해 학부모와 교사가 함께 학교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학생들 동아리 활동에 학부모도 참여하며 힉부모 회의 월 1회 개최, 통해 보다 나은 교육을 위한 의견을 반영하고 있다.
교사들은 문화, 환경의 단점을 오히려 장점으로 승화 시키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학교 환경의 구성에도 직접 참여, 아이들의 눈 높이로 학교를 바꾸어 나가고 있다.
2001년 시작한 남한산 초교의 새로운 학교 만들기는 아직 결론을 내리기엔 성급하지만 광주교육청에서 실시한 ‘학교 평가’에서 1위를 차지하고 ‘아름다운 학교 공모전’에서 2001년 대상을 차지하는 점들을 볼 때 어느 정도 성공의 길을 걷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정연탁 교장
-학교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고 하던데
폐교 직전의 학교로 부임해 와서 지금 아름다운 학교를 만드는데 일익을 담당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그래서 무척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다.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관은
인성교육에 힘쓰고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길러주는 주고 싶다.
-학생과 교사 들에게 한마디
모두가 즐겁고, 재미 있고, 오고싶은 학교를 만들어 가자. 대한 민국에서 가장 편안하고 보람있는 학교, 직장이 되었으면 한다.
남한산 초등학교는 2000년도 후반 학생의 수가 26명까지 줄어드는 소규모 학교의 전형적인 절차를 밟아 왔다. 하지만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 시켜 지금은 알찬 교육 내용과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어울어진 학교로 변화했다.
역사와 졸업생
1912년 광주보통학교로 출발, 남한산 공립 보통 학교, 남한산 심상소학교등으로 불리다 1941년 남한산 국민학교로 변경된다. 6.25동란 때 폭격으로 교사가 불에 타 1951년 6월 66명의 학생으로 다시 개교하게 된다. 1996년 지금의 이름인 남한산초등학교로 변경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남한산 초등학교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해공 신익희(1892~1956) 선생이 있다. 한평생 조국을 위해 헌신한 민족 지도자 이며 독립을 위해 노력한 정치가 이다.
이밖에도 70년대 인물인 남덕우 부총리와 축구국가대표 출신인 서정원 선수가 남한산 초등학교의 선배들이다.
단점을 장점으로
2000년 남한산초등학교의 학생 수는 불과 26명으로 폐교의 위험에 몰리게 됐다. 하지만 지역 주민, 학부모, 지역인사 그리고 교육계의 인사들이 뜻을 모아 학교 살리기에 나섰다. ‘전입학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학생수를 늘리고 새로운 학교 만들기의 토의와 협의를 거쳐 문제점을 하나하나 고쳐 가기 시작 했다.
또 학교측에서도 새로운 교사의 영입과 교육프로그램의 개발, 전입 학생과 학부모에 대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주변의 우려와 기대 속에 2001년 3월 남한산초등학교는 제 2의 개교를 맞이하게 된다.
학생이 즐거운 학교
남한산 초교의 수업 시간은 80분이다. 쉬는 시간도 30분이나 된다. 교과 시간의 파격은 아이들이 더 공부에 열중하고 놀이에 더 열중하라는 학교측의 배려다. 80분의 수업시간 중 교과 수업과 놀이가 병행 된다. 학생들은 아름다운 주변 환경을 벗삼아 열심히 공부 할 수 있다.
교육청이 주관하는 체험 학습 프로그램이 시행되기 이전인 2001년부터 토요일이면 학생들은 연극, 음악회, 박물관 견학등 체험학습을 시행하고 있다.
또 6월에는 숲속에서 수업이 진행 되는 ‘숲속 학교’, 방학기간을 이용해 10개 정도의 계절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가을에 ‘남한산성 문화제’에 참가도 하고 있다.
학교 공통체 만들기
학교의 자치적 운영을 위해 학부모와 교사가 함께 학교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학생들 동아리 활동에 학부모도 참여하며 힉부모 회의 월 1회 개최, 통해 보다 나은 교육을 위한 의견을 반영하고 있다.
교사들은 문화, 환경의 단점을 오히려 장점으로 승화 시키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학교 환경의 구성에도 직접 참여, 아이들의 눈 높이로 학교를 바꾸어 나가고 있다.
2001년 시작한 남한산 초교의 새로운 학교 만들기는 아직 결론을 내리기엔 성급하지만 광주교육청에서 실시한 ‘학교 평가’에서 1위를 차지하고 ‘아름다운 학교 공모전’에서 2001년 대상을 차지하는 점들을 볼 때 어느 정도 성공의 길을 걷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정연탁 교장
-학교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고 하던데
폐교 직전의 학교로 부임해 와서 지금 아름다운 학교를 만드는데 일익을 담당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그래서 무척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다.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관은
인성교육에 힘쓰고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길러주는 주고 싶다.
-학생과 교사 들에게 한마디
모두가 즐겁고, 재미 있고, 오고싶은 학교를 만들어 가자. 대한 민국에서 가장 편안하고 보람있는 학교, 직장이 되었으면 한다.
강석준 기자 jun@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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