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따 도기제(陶器祭) 100주년 교류로 방문단에 합류하여 찾은 일본은 생소한 지역이라기 보다는 한국에 있는 시골마을의 풍경을 보는 듯 편안함을 안겨 주었다.
공식행사인 조선인 도공(陶工) 이삼평(李參平)을 기리는 도조제(陶祖祭)의 참관은 그 의미도 컸으나 마음 깊은곳에서는 한국인 조상을 섬기는 일본인에 대한 한민족의 우월감으로 마음이 뿌듯했다.
임진왜란때 일본으로 끌려가 불행했을 거라는 막연한 추측이 있었지만 아리따로 본다면 도자기를 후손에게 물려줘 유럽으로 수출까지 하게끔 도자기술인 선진문물을 전수해 준 스승이자 조상인 것이다. 그 이유로 이삼평이 한국인임을 알면서도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한 도조제를 매년 올리고 있는 것이다.
가족과 고국을 뒤로한 채 일본이라는 낮선 미개의 나라에서 눈물로 밤을 지새웠겠지만 '쟁이'라는 신분으로 평생을 억압으로 살았던 낮은 신분출신의 도공 입장에서는 스승으로 모시며 떠받드는 일본인들의 기술본위의 융성한 대접에 시름을 잊으며 본인의 기술을 유감없이 펼쳤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을 해 본다.
그러한 역사적 사실이 아리따 지역경제의 90%이상을 도자산업으로 발전시켰고 주민들은 도자수출로 어려운 국내사정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어를 못하는 본인의 판단은 그저 눈으로만 보여지는 단면적인 부분으로 판단하고 느꼈을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어떤 평가의 기준보다도 직접 보고 느끼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판단으로 몇가지 서술하고자 한다.
◆아리따 도자기축제는 지역주민 모두가 참여하는 열린공간에서의 마을축제라는 점이다.
도자 판매는 도자업계 관련자들 뿐만 아니라 마을주민 모두가 주인의식을 갖고 참여한다는 것이다. 약국.일반상점 간판이 있는 상가에서도 축제기간 만큼은 상점물건을 도자기로 교체하고 직접 판매에 나섬으로서 도로 양옆 모두가 도자기 판매업소로 변해 있었다.
아마도 100년의 역사가 만들어낸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수 없겠지만 마을 전체에서 이루어지는 진풍경은 자연스런 감탄사를 불러 일으켰다.
◆장소를 옮겨 지역에 있는 상공회의소에서 주관하는 '제100회 九州山口 도자전'을 관람하던 중 대상 수상작품의 작품성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다시 행사거리로 나와 거닐던 중 상점과 상점사이 담벼락에 검은 천을 붙이고 그 위에 작품을 걸어놓고 마치 호객행위를 하듯 지나가는 관광객들에게 일일이 작품을 설명하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너무도 열심히 움직이는 모습에 가까이 가서 작품을 보니 그 공모전에서 보았던 작품이 아닌가. 생각에 '참 빠르기도 하지. 벌써 대상작품의 모방품이 나왔구나'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대상을 수상한 작가 본인였던 것이다. 어찌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나의 무지함이 그저 부끄러울 뿐이었다.
◆도자기는 생활이어야 하고, 늘 도자기가 관심사여야 한다. 흔히 말하는 도예인만을 위한 도자기축제가 아니라 시민 모두의 축제여야 한다는 대명제는 모두가 잘아는 사실이다. 이를 위해서는 도예인과 시민 모두가 참여하는 열린공간에서의 축제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
도예종사자들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실험과 연구를 통해 자신있게 작품을 발표해야 하고, 시민들은 도자기를 내것인양 자랑스럽게 주변에 홍보하는 모습을 보일때 도자업계는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매년 열리고 있는 도자기축제가 지역경제를 이끌어 가며 거듭 성장할 수 있는 것은 축제만을 위한 1년 계획이 아니라 50년.100년을 내다보는 중장기적인 마스터플랜을 세워 단계적으로 실천해 나가야 한다.
공식행사인 조선인 도공(陶工) 이삼평(李參平)을 기리는 도조제(陶祖祭)의 참관은 그 의미도 컸으나 마음 깊은곳에서는 한국인 조상을 섬기는 일본인에 대한 한민족의 우월감으로 마음이 뿌듯했다.
임진왜란때 일본으로 끌려가 불행했을 거라는 막연한 추측이 있었지만 아리따로 본다면 도자기를 후손에게 물려줘 유럽으로 수출까지 하게끔 도자기술인 선진문물을 전수해 준 스승이자 조상인 것이다. 그 이유로 이삼평이 한국인임을 알면서도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한 도조제를 매년 올리고 있는 것이다.
가족과 고국을 뒤로한 채 일본이라는 낮선 미개의 나라에서 눈물로 밤을 지새웠겠지만 '쟁이'라는 신분으로 평생을 억압으로 살았던 낮은 신분출신의 도공 입장에서는 스승으로 모시며 떠받드는 일본인들의 기술본위의 융성한 대접에 시름을 잊으며 본인의 기술을 유감없이 펼쳤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을 해 본다.
그러한 역사적 사실이 아리따 지역경제의 90%이상을 도자산업으로 발전시켰고 주민들은 도자수출로 어려운 국내사정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어를 못하는 본인의 판단은 그저 눈으로만 보여지는 단면적인 부분으로 판단하고 느꼈을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어떤 평가의 기준보다도 직접 보고 느끼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판단으로 몇가지 서술하고자 한다.
◆아리따 도자기축제는 지역주민 모두가 참여하는 열린공간에서의 마을축제라는 점이다.
도자 판매는 도자업계 관련자들 뿐만 아니라 마을주민 모두가 주인의식을 갖고 참여한다는 것이다. 약국.일반상점 간판이 있는 상가에서도 축제기간 만큼은 상점물건을 도자기로 교체하고 직접 판매에 나섬으로서 도로 양옆 모두가 도자기 판매업소로 변해 있었다.
아마도 100년의 역사가 만들어낸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수 없겠지만 마을 전체에서 이루어지는 진풍경은 자연스런 감탄사를 불러 일으켰다.
◆장소를 옮겨 지역에 있는 상공회의소에서 주관하는 '제100회 九州山口 도자전'을 관람하던 중 대상 수상작품의 작품성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다시 행사거리로 나와 거닐던 중 상점과 상점사이 담벼락에 검은 천을 붙이고 그 위에 작품을 걸어놓고 마치 호객행위를 하듯 지나가는 관광객들에게 일일이 작품을 설명하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너무도 열심히 움직이는 모습에 가까이 가서 작품을 보니 그 공모전에서 보았던 작품이 아닌가. 생각에 '참 빠르기도 하지. 벌써 대상작품의 모방품이 나왔구나'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대상을 수상한 작가 본인였던 것이다. 어찌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나의 무지함이 그저 부끄러울 뿐이었다.
◆도자기는 생활이어야 하고, 늘 도자기가 관심사여야 한다. 흔히 말하는 도예인만을 위한 도자기축제가 아니라 시민 모두의 축제여야 한다는 대명제는 모두가 잘아는 사실이다. 이를 위해서는 도예인과 시민 모두가 참여하는 열린공간에서의 축제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
도예종사자들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실험과 연구를 통해 자신있게 작품을 발표해야 하고, 시민들은 도자기를 내것인양 자랑스럽게 주변에 홍보하는 모습을 보일때 도자업계는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매년 열리고 있는 도자기축제가 지역경제를 이끌어 가며 거듭 성장할 수 있는 것은 축제만을 위한 1년 계획이 아니라 50년.100년을 내다보는 중장기적인 마스터플랜을 세워 단계적으로 실천해 나가야 한다.
김선우(이천예총사무국장) han@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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