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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 거리 예술제
2003년에는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었다.

새롭게 단장한 '참여 정부'호가 출발하게 되면, 구곡(舊穀)을 탈피하여 국민에게 희망과 보람을 주는 시대가 펼쳐질 줄로 기대하였었다.

그런데 운전이 서툰 탓으로 보기에는 이상할 만큼 기우뚱거리는가 하면, 이러다가는 궤도이탈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에 우리는 한 순간도 마음놓고 눈을 붙이지 못하고 지내왔다.

또한, 북에서는 핵무기를 가졌다느니 거의 만들었다느니 하며 우리의 공포감을 자극하며 피곤케 하다가, 3자회담이니 다자회담이니 밀고 당기는 비상한 전략을 강구하고는 무엇을 보내라 어떤 조건이 있다는 등 우리의 머릿속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

'열'을 받은 미국은 '일단' 이라크를 무자비하게 때려부수고는 충혈된 눈으로 북쪽을 노려보고 있는 등의 경황(驚惶)중에 어느덧 5월로 접어들었다.

극심한 불경기, 전쟁의 공포, 정체성이 흔들거리는 불안한 정국 등의 와중에서도 꽃이 피어나고 신록은 그 빛을 더해가는 계절의 여왕이 어김없이 찾아온 것이다.

1일은 법의 날이요 근로자의 날이었고, 5일은 어린이 날, 8일은 부처님 오신 날에 어버이의 날, 15일은 스승의 날, 18일은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 19일은 성년의 날·발명의 날, 21일은 방재(防災)의 날, 31일은 바다의 날 등 무려 11개의 기념일들이 '얼'이 빠져있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각종 축제와 행사는 방방곡곡에서 예정되고 있다.

가족들과의 사랑·가정의 화목을 위하고 싶은데, 학교·직장·사회의 안녕을 기원하고자 하는데, 부처님의 자비가 온 누리에 가득하기를 합장코자 하는데 어느 누가, 그 무엇이 우리의 염원을 비웃는단 말인가.

묵고 찌든 상황을 벗어나고픈 마음이 어찌 간절하지 않으랴.

척박한 하남시의 토양에 아주 작은 예술의 씨앗이 떨어져 뿌리를 내린지도 어느덧 5년이 지났으니, 제6회 「하남거리예술제」가 바로 그것이다.

그 '거리'의 예술인들은 이름과 권위를 떨치고 있는 '대가(大家)'도 아닐 뿐더러 이 행사가 대대적으로 홍보되고 있지는 않으나, 하남시와 예술을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이 시민들과 어우러져 생활하며 이 시대를 같이 고민하는 과정에서 내 놓은 작품들이기 때문에, 그 존재가 더욱 의미있고 가치가 있는 행사인 것이다.

"예술에 관한 논의(論議)는 가장 공허한 논의이다. 예술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각 예술은 제각기의 특별한 말로써 말하고 있다는 것과, 그리고 예술에 대하여 이러쿵 저러쿵 입으로 떠드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다 저렇다 하며 예술에 대하여 수다스럽게 말하는 사람들은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며, 예술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다." 라는 <톨스토이>의 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우리는 예술가라고 특정된 사람들이 만든 작품이나 그들의 활동을 예술의 영역이라고 생각해 왔으며, 그들의 세계에서 평가를 받은 후에 '훌륭하다'고 매김을 받아야만 우리 또한 덩달아서 고개를 끄덕거리며 감상하는 체 하는 '국외자'였다.

그러나 우리는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예술인의 정신이 살아 있다면 그것은 계산이나 이론이 필요없는 것이며, 아름다움(美)은 우리가 느낄 수있고 또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것이지 그것의 기준을 정할 수는 없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모든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감동을 일으키고 또한 이해할 수 있게 만든 작품이 진정한 예술이며, 거기에는 무슨 대학출신파네 어디 유학파니 누구 문하생이라는 등의 구구한 설명은 필요없는 것이다.

우리가 이름 없는 들꽃을 통하여 자연의 오묘함과 미적 감동을 느꼈다면, 우리에게는 그 들꽃의 모습이 화사한 자태를 뽑내는 장미꽃보다도 더 아름답게 보인다.

거리의 예술인들이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내놓은 작품들을 싱그러운 가슴으로 대하며, 건강한 정신을 같이 느끼고, 이 땅의 아름다운 것들을 새긴다면 그 '들꽃'들의 의미가 더욱 빛나는 축제가 될 것이다.

하남거리예술제의 주인공은 하남시민이어야 한다.

살아 있는, 의미가 있는, 거짓과 기교가 없는 시민들의 작품들을 서로 감상하고 그 특별한 말들을 나누며 숨소리를 듣노라면, 답답한 가슴도 탁 트이고 5월의 향기 또한 새로울 것이다. '카타르시스(Katharsis)'의 무대가 있는 사회만이 시민들의 통합을 이루고 그 사회가 발전하기 마련이다.

곽근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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