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6월에 발생한 소위 '의정부 여중생 사건'은 격렬한 항의시위와 반미구호, 촛불행사 등 이 나라에 반미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도화선이 되었다. 미국 측은 훈련 중인 미 장갑차가 심미선, 신효순 양을 무참하게 깔아죽였는데도 사과 한 마디 하지 않고 있다가, 한국민이 끈질기게 요구하자 마지못해 사과하는 시늉을 한 것으로 보여졌다.
사고를 일으킨 미군 병사들을 자기들끼리의 군사재판을 거쳐 무죄판결을 한 후, 본국으로 빼돌리는 것에 우리는 분노를 금치 못했었다.
우리와 혈맹관계에 있다는 미국이 이토록 우리를 깔볼 수가 있을 것이며, 인권국가라고 떠들어대는 그들이 꽃다운 소녀들의 목숨을 앗고도 저토록 뻔뻔스러울 수 있단 말인가.
각종 언론은 미국의 '횡포'를 경쟁하듯이 보도하였고, 특히 인터넷에서는 별의 별 흉흉한 소문이 나돌았었다. 그 기분 나쁜 사건에 대한 '열화'가 어느 정도 가라앉을 무렵, 「월간중앙」2월호를 보게 되었다.
최영재 기자가 지난 1월에 의정부 여중생 사건을 일으킨 미2사단 사령부와 사고부대인 2사단 예하 캠프하우즈(미 제2사단 공병여단) 내부를 취재한 기사를 읽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주한미군은 사건이 일어난 2002년 6월 13일 주한미군 참모장 명의의 유감과 조의를 성명서로 발표하였고, 6월 18일에는 캠프 하우즈에서 미2사단장 등 장성 3명과 미군 병사 400여명이 미선·효순 양의 죽음을 애도하며 철야로 촛불예배를 올렸다는 것이다.
또한, 7월 4일에는 주한미군사령관이 직접 사과성명을 발표하여 피해 여중생 가족에게 슬픔과 조의를 표명하였지만, 오히려 사건 초기에 이를 외면한 것은 월드컵 열기에 파묻혀 있던 한국 국민과 한국 언론이었던 것이다. 문제가된 장갑차의 시동을 걸어보니 소음 때문에 옆 사람과도 대화가 안 될 정도였고, 당시 운전병이 쓴 헬멧이 고장나 '통신장애'가 사고의 직접적 원인이었다고 한다.
당시 인터넷상에 유통되는 정보에서는 사고 장갑차가 피해 여중생을 고의로 살해하였으며, 그것도 전진과 후진을 세 차례나 반복하며 치었다는 소문이 나돌았었다. 실제 상황과는 전혀 관계도 없는 인터넷의 잘못된 정보가 사실처럼 무차별적으로 유포돼 어린 학생들까지 이 사건을 잘못 이해하고, 현재까지도 촛불시위를 하고 있는 초등학교 학생이 있다고 하니 당혹스럽기만 하다. 악의적인 선동이든, 잘못된 정보이든 간에 사실과 다른 언론보도가 엄청난 결과와 후유증을 가져온 것이다.
반미풍조는 물론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일단의 세력이 공공연히 활개를 치는가 하면, 미국 측에서도 반한기류가 고조되어 한국민이 원치 않는다면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는 등 심각한 국면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국민이나 언론에서는 북한이 '왜' 핵을 개발하고 그것을 '어디에' 시용하려는 것일까, 남쪽에서는 북쪽을 죽고 못 살 것처럼 사랑한다고 아우성치고 있는데 어째서 북쪽은 야릇한 미소를 띄고 팔짱을 낀 채 남쪽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을까 등에는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소위 의정부 여중생사건은 의도되고 왜곡된 언론보도가 '핵' 그것만큼이나 위험하기 짝이 없는 파괴력이 있음을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었다.
'교차로 저널'이 환골탈태하여 모습을 새롭게 하였다. 본지가 지역언론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하기 위한 제1의 취지는 「사실보도」이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비리를 은폐하거나, 부조리와 타협하거나, 이권과 결탁하는 보도는 있을 수 없다.
교차로 저널 가족들은 있는 사실은 그대로, 사건은 공익을 우선으로, 당면과제는 시민의 편에 서서 머뭇거림 없이 보도하겠다는 결의를 굳게 다짐하였다.
압력에 굴복하여 사실을 은폐하거나, 친분관계나 이해관계에 얽혀 의도된 기사를 내보낸다거나, 정치적 목적·지역이기주의에 의한 왜곡된 보도를 한다면 언론으로서의 본분을 저버린 행위일 뿐더러 지역사회에 이루 말할 수 없는 해악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탄하였던 그 미군들의 발언을 들어본다.
스티븐 칼클린 일병은 '사고 당시 이 부대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너무너무 슬펐다. 그래서 사고 직후 부대 안에서 열린 촛불추모예배에서 많이 울었다. 내 고향에 가면 사고를 당한 여중생 또래의 친척들이 있다. 그런 아이들이 죽었다고 생각하니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피해자를 추모하는 성금을 내는데도 참여했다. 고 하였고, 사고 부대장인 마이클 알 헬믹 대령은 '북한에서 자유로운 시위가 가능하겠는가. 반미시위를 할 수 있는 한국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임무' 라고 하였다는 기사를 읽으며 곰곰히 생각해 본다.
사고를 일으킨 미군 병사들을 자기들끼리의 군사재판을 거쳐 무죄판결을 한 후, 본국으로 빼돌리는 것에 우리는 분노를 금치 못했었다.
우리와 혈맹관계에 있다는 미국이 이토록 우리를 깔볼 수가 있을 것이며, 인권국가라고 떠들어대는 그들이 꽃다운 소녀들의 목숨을 앗고도 저토록 뻔뻔스러울 수 있단 말인가.
각종 언론은 미국의 '횡포'를 경쟁하듯이 보도하였고, 특히 인터넷에서는 별의 별 흉흉한 소문이 나돌았었다. 그 기분 나쁜 사건에 대한 '열화'가 어느 정도 가라앉을 무렵, 「월간중앙」2월호를 보게 되었다.
최영재 기자가 지난 1월에 의정부 여중생 사건을 일으킨 미2사단 사령부와 사고부대인 2사단 예하 캠프하우즈(미 제2사단 공병여단) 내부를 취재한 기사를 읽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주한미군은 사건이 일어난 2002년 6월 13일 주한미군 참모장 명의의 유감과 조의를 성명서로 발표하였고, 6월 18일에는 캠프 하우즈에서 미2사단장 등 장성 3명과 미군 병사 400여명이 미선·효순 양의 죽음을 애도하며 철야로 촛불예배를 올렸다는 것이다.
또한, 7월 4일에는 주한미군사령관이 직접 사과성명을 발표하여 피해 여중생 가족에게 슬픔과 조의를 표명하였지만, 오히려 사건 초기에 이를 외면한 것은 월드컵 열기에 파묻혀 있던 한국 국민과 한국 언론이었던 것이다. 문제가된 장갑차의 시동을 걸어보니 소음 때문에 옆 사람과도 대화가 안 될 정도였고, 당시 운전병이 쓴 헬멧이 고장나 '통신장애'가 사고의 직접적 원인이었다고 한다.
당시 인터넷상에 유통되는 정보에서는 사고 장갑차가 피해 여중생을 고의로 살해하였으며, 그것도 전진과 후진을 세 차례나 반복하며 치었다는 소문이 나돌았었다. 실제 상황과는 전혀 관계도 없는 인터넷의 잘못된 정보가 사실처럼 무차별적으로 유포돼 어린 학생들까지 이 사건을 잘못 이해하고, 현재까지도 촛불시위를 하고 있는 초등학교 학생이 있다고 하니 당혹스럽기만 하다. 악의적인 선동이든, 잘못된 정보이든 간에 사실과 다른 언론보도가 엄청난 결과와 후유증을 가져온 것이다.
반미풍조는 물론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일단의 세력이 공공연히 활개를 치는가 하면, 미국 측에서도 반한기류가 고조되어 한국민이 원치 않는다면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는 등 심각한 국면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국민이나 언론에서는 북한이 '왜' 핵을 개발하고 그것을 '어디에' 시용하려는 것일까, 남쪽에서는 북쪽을 죽고 못 살 것처럼 사랑한다고 아우성치고 있는데 어째서 북쪽은 야릇한 미소를 띄고 팔짱을 낀 채 남쪽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을까 등에는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소위 의정부 여중생사건은 의도되고 왜곡된 언론보도가 '핵' 그것만큼이나 위험하기 짝이 없는 파괴력이 있음을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었다.
'교차로 저널'이 환골탈태하여 모습을 새롭게 하였다. 본지가 지역언론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하기 위한 제1의 취지는 「사실보도」이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비리를 은폐하거나, 부조리와 타협하거나, 이권과 결탁하는 보도는 있을 수 없다.
교차로 저널 가족들은 있는 사실은 그대로, 사건은 공익을 우선으로, 당면과제는 시민의 편에 서서 머뭇거림 없이 보도하겠다는 결의를 굳게 다짐하였다.
압력에 굴복하여 사실을 은폐하거나, 친분관계나 이해관계에 얽혀 의도된 기사를 내보낸다거나, 정치적 목적·지역이기주의에 의한 왜곡된 보도를 한다면 언론으로서의 본분을 저버린 행위일 뿐더러 지역사회에 이루 말할 수 없는 해악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탄하였던 그 미군들의 발언을 들어본다.
스티븐 칼클린 일병은 '사고 당시 이 부대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너무너무 슬펐다. 그래서 사고 직후 부대 안에서 열린 촛불추모예배에서 많이 울었다. 내 고향에 가면 사고를 당한 여중생 또래의 친척들이 있다. 그런 아이들이 죽었다고 생각하니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피해자를 추모하는 성금을 내는데도 참여했다. 고 하였고, 사고 부대장인 마이클 알 헬믹 대령은 '북한에서 자유로운 시위가 가능하겠는가. 반미시위를 할 수 있는 한국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임무' 라고 하였다는 기사를 읽으며 곰곰히 생각해 본다.
곽근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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