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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자(順天者)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와 국민통합 21 정몽준(鄭夢準) 대통령후보가 후보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기관의 조사를 벌인 결과, 노후보가 12월 19일 대선 본선에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와 대결할 단일후보가 되었다.

정몽준후보는 노후보의 승리를 축하하면서 "내가 옛 정치를 바꾸는 데 일조를 했다고 믿는다"고 말하였다고 한다. 경쟁에서 패배한 심정이야 오죽 착잡하겠느냐만 그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는 정후보의 행동은 많은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하다.

지금, 이 나라의 정치풍토와 사회분위기는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배신·변절·폭로·이합집산 등 부정적인 용어들이 정치현상을 먹칠하고 있고, 비리·부패·사기·퇴폐 등 있어서는 안될 낱말들이 우리의 가치관과 생활터전들을 멍들게 하고 있다.

당대의 풍운아라고 지칭되던 이른바 JP(자민련 김종필총재)가 처해있는 상황을 보면 씁쓸하기만 하다.

물론 JP본인이 양지지향적이고 권모술수에 의지한 정치생활을 연명해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는 하다.

그가 '별볼 일'이 있을 때는 그에게 빌붙은 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그를 칭송한 '공로'로 장관도 하고 국회의원 노릇도 하는 등 영화를 누렸었다. 그러나, 정치현실의 변화로 인하여 JP가 힘을 잃게 되는 것처럼 보이자 얼굴색을 표변하여 그를 비난하고는 별볼 일 있어 보이는 다른 정당으로 몰려가는 '꼴'들을 보면서, 우리의 얼굴은 화끈거릴 수 밖에 없다.

정치적 신념이나 노선도 제대로 갖춘 것이 없고, 신의나 사명감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자들이 일국의 국회의원이 되어 국정을 논의하고 국민의 지도자 행세를 해왔으니 그들을 선거로 뽑는 우리가 어찌 부끄러움과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있다.
그동안 숨을 죽이고 조용히 있다가 왜 '하필' 대선기간에 김대업씨는 소위 병풍비리를 요란스럽게 떠들어대다가 잠적해 버리고, 이익치씨는 피신해 있던 미국에서 돌아와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을 폭로하느냐 이다. 그들이 그토록 정의감이 투철하고 용기있는 자들이었다면 무엇이 두려워 도망 다니다가 이제 나타났을까. 그들의 의도와 그 배후가 사건의 실체보다도 더 궁금한 것이다.

대통령선거는 어떻게 하면 국가를 더욱 번영케 하고 국민들의 행복을 더 증진시킬 것인가를 두고 경쟁을 하는 국민의 축제마당이 되어야만 마땅하거늘, 이 나라에 하등의 도움이 안될 뿐더러 이 땅에 있어서는 안될 부정적인 요소들이 난무하여 흡사 '조폭'들끼리 벌이는 무시무시한 싸움마당을 보는 것 같으니, 우리는 불안감과 실망감을 떨칠 수가 없다.

조선조 정조(正祖)시대 이른바 북학파의 학자였던 박제가(朴齊家)는 뜻이 높은 선비가 낙향하게 되자 "대장부란 때를 잘 만나 조정의 높은 관리가 되었다 해도 영화롭게 여기지 아니하고, 뜻을 펴지 못하여 바위굴에 숨어 사는것도 욕되게 여기지 않는다"면서 그 선비를 기렸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기회포착으로 세상에서 말하는 부귀영화를 쟁취하였다고 하여, 그 사람을 진정 대장부라 할 수는 없다.

그들은 한낱 소인배에 지나지 않는다.
본인과 친인척·측근들의 비리와 부패로 국민의 존경과 신뢰를 잃어버린 대통령이나 단체장 등 권력자였던 자들의 초라한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그들이 대장부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공자께서는 "순천자(順天者)는 존(存)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亡)이니라"고 하셨다.

천명과 자연의 법도에 순응하는 사람은 살아남지만, 그것을 거스르는 자는 망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대선결과의 여부와 관계없이, 정몽준 후보가 후보단일화의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여 신의를 지키는 아름다운 행동에 오랜만의 감동을 맛보게 된다. '역천자'는 필히 망하도록 하는 것만이 우리의 할 일이고,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이다.

곽근홍(논설위원)  young@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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