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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원, 조선 최대 가마터 재확인이화여대박물관, 분원리 백자도요지 현장설명회
조선시대 관요지인 남종면 분원리 도요지가 조선 후기∼말기까지 작업한 왕실관요 요장가운데 최초이자 최대의 가마터임이 재확인됐다.

이화여대박물관 발굴조사단(조사단장 윤난지)은 지난 7일 남종면 분원초등학교 위 발굴현장에서 조선백자 도요지 2차 현장설명회를 개최하고 발굴된 유물들을 공개했다.

발굴단은 지난 9월7일부터 11월 7일까지 진행한 2차 발굴에서 가마와 공방터, 소성실 등과 청화백자, 원통형제기, 투구형갑발, 연적, 잔, 호롱뚜껑 등 다량의 백자파편을 수습했다고 밝혔다.

특히 발굴된 순백자는 발, 대접, 접시, 완, 잔, 팔각굽제기 등이 있고 대체로 기벽이 두텁고 굽을 깊게 깍았다. 청화백자는 구연과 굽에 한 줄의 청화선을 돌리고 몸체에 도안된 '壽福'문이 전사된 백자가 대종을 이뤘으며, 기형은 발, 대접, 완이 세트를 이루고 있다.

이들 자기는 굽 바닥에 '汾院' 또는 '汾'의 명문이 전사돼 있는 것이 특징이며, 遠上寒山...이라는 글씨가 쓰여진 초벌편도 출토됐다.

이번 조사사에 발굴된 유물들은 각 퇴적층위에 따라 시기적인 차이가 확연히 나타나며 출토유물은 지난해 조사된 유물 중 하품에 속하는 유물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발굴단은 분원 유적에서 번조방법은 갑발을 씌워 구운 고급의 匣燔과 포개굽은 방법이 주를 이루며,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번법은 굽바닥에 흙물을 묻히고 굵은 모래나 돌가루를 돌려 포개굽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밝혔다.

출토유물은 기종에 따라 반상기와 제기로 대별되며 지통 등의 문방구류도 출토했다. 반상기는 발, 사발, 대접, 완, 잔, 접시 등으로 구성됐으며 문양은 내저에 청화로 '壽' '福'이 시문된 것과 구연에 두줄의 선을 두르고 도안된 '福'을 시문한 것, 그리고 구연에 선을 두르고 초화문을 시문한 것도 있다.

명문은 청화로 汾院(현재는 分院으로 표기) 또는 '汾' '靑'이 전사돼 있으며, 음각문은 '一' '二' '十' '夫' 등이 확인됐다.

번법은 가는 모래, 모래비짐, 흙물에 굽을 담갔다가 다시 굶은 모래를 바른 세가지 종류가 나타나고 있다.

제기는 발과 접시, 향로 등이 있는데 굽은 팔각굽과 원통형이 있다. 유색은 백색, 번법은 가는모래 받침의 갑번과 흙물을 바르고 굵은 모래를 찍어 바르는 방법이 있다.

요도구로는 갑발, 도침 등이 있으며 갑발은 폐자기를 활용한 것으로 보이는 유물이 AKGS이 나타나고 있다.

종형, 사발형, 원통형 등의 다양한 기형이 보이며, 도침은 경사진 원반형이 대종을 이루고 원통형 도침도 있다. 그 외에 초벌구이 된 묘지석편이 도침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번 분원 조선백자도요지 발굴조사를 통해 총 4개의 가마와 관련 퇴적층을 통해 가마들의 선후관계를 파악함으로써 분원요업의 변화상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확보됐으며, 1752년 분원 요장이 남종면으로 이설된 이후 금사리에서 분원이러 이어지는 분원리 초기 요업의 상황을 보여주는 퇴적의 범위가 확인됐다.

특히 1884년 분원이 민영화된 이후에 운영됐던 것으로 보이는 개량가마의 퇴적물을 확보함으로서 조선후기에서 근대까지 이어지는 분원요장의 가마구조의 변화과정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발굴단은 이번 발굴을 통해 "분원리는 조선후기∼말까지 작업한 왕실관요 요장가운데 최초이자 최대의 가마터이나 이번 발굴 조사만으로는 그 전모를 밝히기는 부족하며 최소한 3년 이상의 장기계획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일부 퇴적층에서 수습된 분원리 초기 유형 백자의 퇴적층이 현 초등학교 진입로 및 남쪽으로 연결된 것으로 확인돼 조사대상지의 확장이 추가 요망된다"며 "초등학교 운동장 방면으로 확장이 불가해 조사가 중단됨에 따라 해결책이 필요하고 현 사적 이외에 초등학교 운동장 이대에 대한 추가 사적 지정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한근영기자  young@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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