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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관오리(貪官汚吏)
그는 사람들에게 말할 기회가 있으면 이 나라에 만연되어 있는 부정부패라든가 권력비리를 개탄하였다. 스스로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데 몸을 바치겠다고 호소하는 그의 '의기(義氣)'에 사람들은 훌륭한 사람인가 보다 라고 믿게 되었다. 주도면밀한 선거전략이 주효해서 인지, 결국 그는 꿈에도 그리던 기초단체장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거기서부터 불행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그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지도자는 어떠한 자질이 필요한지, 지방자치가 왜 있는 것인지 등 아무 것도 아는 바가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거기에다가 도덕성이나 능력으로서 그 지역에서 인정받은 적도 없던, 그렇고 그런 사람이었다.

그저 선거판·정치판에 몸을 담근채 공허한 구호만 떠들어댄 일이 전부이지만, 그의 당선가능성을 내다본 '업자' 들의 후원을 받았으니 그는 그들에게 무엇인가를 해주어야할 부담을 안고 출발한 것이다. 그는 기초단체장의 지위를 호의호식하고 부(富)를 축적하는 자리로 알고 비리를 저지르다가 끝내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단체장이 특정인들에게 특혜를 주고 그 대가를 받는 등 비리를 저지르면 공정한 행정을 펼칠 수 가 없다. 그에 편승하여 그 밑의 공무원들도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부정을 일삼고 사복(私腹)을 채우는 데에 급급하게 된다.

탐관오리들이 기승을 부리는 사회 치고 발전과 번영을 누린 나라는 한번도 없었다 크고 작은 공사를 무론하고 '봉투'가 있어야만 인허가를 딸 수 있고, 소위 '리베이트' 등의 대가를 지불하여야만 일을 추진할 수가 있으니 국가와 지역경제는 편파적으로 왜곡되고, 벌이는 공사마다 부실공사가 되어 그 폐단이 이루 말할 수가 없게 된다.

현재 세상이 뒤숭숭하고 혼란에 빠진 원인이 탐관오리들에게 있다고 하여도 틀린 표현이 아니다. 아무리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하여도 그들의 농간 때문에 되는 일이 없으니, 어느 누가 이 사회에 신뢰를 주고 마음을 놓은채 살겠는가. 민심이 흉흉해지고 나라는 분열에 빠질 뿐이다.

예로부터 부정부패는 나라밖의 적(敵)보다도 더 위태롭고, 호랑이보다도 더 무섭다고 하였다. 이 나라가 잘되려면, 이 땅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터전이 될 수 있도록 하려면 탐관오리들을 일망타진(一網打盡)하는 수 밖에 없다. 그들은 백해무익한 존재들인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손으로 지방자치제의 일꾼들을 뽑아서 우리지역의 살림을 맡긴다면, 그들은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공명정대하게 직무를 수행할 것으로 기대하였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겉으로는 시민편의니 친절행정이니 하며 법석을 떨지만, 내용적으로는 '관선시대'보다도 부조리가 심하고 비리가 많다는 탄식소리가 높기만 하다.

순수하게 지지했던 간에,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던 간에, 이해관계 때문이었던 간에 후원해준 인물이 단체장이나 지방의원으로 당선되었다면 당선 그 자체에 의미를 두고 대가를 바라서는 안된다. 그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이 진정한 후원인 것이다.

임기가 시작된지 2개월이 되어가는 단체장이나 지방의원들도 주변의 얽혀있는 끈들을 깨끗하게 단절하는 결단력을 발휘하여야 한다. 그 동안 '탐관오리'들에게 피해를 입은 우리들이 왜 분노하였는지, 어째서 그들을 내세웠는지 그 의미를 깊이 새겨야 한다.

탐관오리가 없는세상, 그것은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는 시민들의 염원인 것이다.


곽근홍(논설위원)  young@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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