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선에 울지 않고 고마운 성원에 웁니다」라는 '기가 막힌' 플래카드가 하남시의 요처에 게시되어 있다. 대선의 전초전이요, 소위 미니총선으로 불리던 8·8 국회의원 재보선지역에서도 '박빙'의 싸움터였던 하남시는 국민들의 관심을 모았었다. 그런 만큼, 낙선자로서는 이루 말 할 수 없는 고통을 맛보고 있을 것이다.
선거라는 것은 산뜻한 정책대결과 공정한 인물의 경쟁이어야 한다. 당선자든 낙선자든 이 나라와 지역에 필요한 인물들이므로,
선거의 결과에 따라 극단적인 상황이 벌어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선거 풍토는 모든 것을 내걸고, 배수(背水)의 진(陳)을 친 필사적인 싸움터가 되었다. 이는 국가적으로나 지역에 있어서 비생산적인 소모전이 아닐 수 없고, 당사자나 그 지지자들에게도 위험한 도박이 아닐 수 없다.
'모' 아니면 '도'의 게임을 벌이는 이 싸움은 더 이상 선거라고 볼 수 가 없으며, 상생(相生)을 추구하는 민주주의의 이념에도 합치되지 않는 것이다.
이번 8·8재보선의 투표율이 29.6%였다고 하니, 50%의 지지를 받아 당선되었다고 하더라도 유권자 15%의 선택을 받았을 뿐이다. 그러한 상태에서 국정을 논의하는 국회의원이 되었으므로 당선자는 정말 겸허한 태도로 국민을 섬겨야 한다. 그는 진정한 승자가 아닌 것이다.
지난 지방선거가 끝난 후에도 당선자는 물론이고, 낙선자들의 '낙선사례'의 플래카드가 도처에 넘실거렸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으로 자부해 오던 터이므로, '눈물'을 머금고 자신을 지지해 준 시민들에게 '예의'를 차리는 것이 인간의 도리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 깍듯한 '사례'의 말들을 보는 시민들로서는 마음이 편치가 않은 것이다. 이 사람도 아깝고 저 사람도 괜찮은데, 어느 누구는 환호성을 지르고 다른 이들은 비탄에 잠겨 있는, 이 모순된 현실을 어찌해야만 한단 말인가.
선거에 나오는 인사들은 한결같이 신명(身命)을 다 바쳐 이 나라와 시민들을 위하여 봉사하겠다고 맹서하는 모습을 익히 보아왔다. 그 치열하기 짝이 없는 선거과정을 통과한 당선자들이 대통령·국회의원·단체장·지방의원이 되었으니 이 땅에는 당연히 바람직한 세상이 펼쳐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 있어서는 부정부패가 판을 치고, 국가와 국민의 그것보다는 집단과 개인의 이익에 혈안이 되어 정치인들끼리의 추한 싸움이 끊일 새가 없으니 우리들은 실망과 허탈감에 빠져 투표장을 외면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정국주도권을 장악하였으니 대선까지 밀어붙이자느니, 정권재창출이 어려우니 신당을 만들자느니 하면서 얄팍한 책략과 계산으로 우왕좌왕하는 '정치판'의 행태는 정녕 이 나라와 시민들을 위하여 신명을 바치려는 자들의 그것이 아닌 것이다. 거짓과 권모술수로 지지를 받을 수가 없다. 진정으로 국민을 위할 때에, 국민들의 마음을 얻는 정치를 하게 될 때 그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왜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항간에는, 선거에서 당선되자 마자 교도소의 담위를 아슬아슬하게 걷고 있는 처지가 된다는 어처구니없는 풍자가 나돌고 있다. 선거기간 동안 드높게 외쳐대던 그 맹서는 온데 간데 없고 비리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린다는 것이다.
소위 '낙선사례'는 유권자들이 그 수렁에 빠지는 불행이 없도록 '낙선'시켜 준 '깊은' 뜻에 사례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이치의 그 절묘함은 예측할 수 없다고 한다.
선거기간 동안의 그 맹서를 더욱 갈고 닦아서 시민들의 마음을 얻고 이 사회의 부조리를 척결해 내는 지혜를 얻는다면,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재목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선거라는 것은 산뜻한 정책대결과 공정한 인물의 경쟁이어야 한다. 당선자든 낙선자든 이 나라와 지역에 필요한 인물들이므로,
선거의 결과에 따라 극단적인 상황이 벌어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선거 풍토는 모든 것을 내걸고, 배수(背水)의 진(陳)을 친 필사적인 싸움터가 되었다. 이는 국가적으로나 지역에 있어서 비생산적인 소모전이 아닐 수 없고, 당사자나 그 지지자들에게도 위험한 도박이 아닐 수 없다.
'모' 아니면 '도'의 게임을 벌이는 이 싸움은 더 이상 선거라고 볼 수 가 없으며, 상생(相生)을 추구하는 민주주의의 이념에도 합치되지 않는 것이다.
이번 8·8재보선의 투표율이 29.6%였다고 하니, 50%의 지지를 받아 당선되었다고 하더라도 유권자 15%의 선택을 받았을 뿐이다. 그러한 상태에서 국정을 논의하는 국회의원이 되었으므로 당선자는 정말 겸허한 태도로 국민을 섬겨야 한다. 그는 진정한 승자가 아닌 것이다.
지난 지방선거가 끝난 후에도 당선자는 물론이고, 낙선자들의 '낙선사례'의 플래카드가 도처에 넘실거렸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으로 자부해 오던 터이므로, '눈물'을 머금고 자신을 지지해 준 시민들에게 '예의'를 차리는 것이 인간의 도리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 깍듯한 '사례'의 말들을 보는 시민들로서는 마음이 편치가 않은 것이다. 이 사람도 아깝고 저 사람도 괜찮은데, 어느 누구는 환호성을 지르고 다른 이들은 비탄에 잠겨 있는, 이 모순된 현실을 어찌해야만 한단 말인가.
선거에 나오는 인사들은 한결같이 신명(身命)을 다 바쳐 이 나라와 시민들을 위하여 봉사하겠다고 맹서하는 모습을 익히 보아왔다. 그 치열하기 짝이 없는 선거과정을 통과한 당선자들이 대통령·국회의원·단체장·지방의원이 되었으니 이 땅에는 당연히 바람직한 세상이 펼쳐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 있어서는 부정부패가 판을 치고, 국가와 국민의 그것보다는 집단과 개인의 이익에 혈안이 되어 정치인들끼리의 추한 싸움이 끊일 새가 없으니 우리들은 실망과 허탈감에 빠져 투표장을 외면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정국주도권을 장악하였으니 대선까지 밀어붙이자느니, 정권재창출이 어려우니 신당을 만들자느니 하면서 얄팍한 책략과 계산으로 우왕좌왕하는 '정치판'의 행태는 정녕 이 나라와 시민들을 위하여 신명을 바치려는 자들의 그것이 아닌 것이다. 거짓과 권모술수로 지지를 받을 수가 없다. 진정으로 국민을 위할 때에, 국민들의 마음을 얻는 정치를 하게 될 때 그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왜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항간에는, 선거에서 당선되자 마자 교도소의 담위를 아슬아슬하게 걷고 있는 처지가 된다는 어처구니없는 풍자가 나돌고 있다. 선거기간 동안 드높게 외쳐대던 그 맹서는 온데 간데 없고 비리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린다는 것이다.
소위 '낙선사례'는 유권자들이 그 수렁에 빠지는 불행이 없도록 '낙선'시켜 준 '깊은' 뜻에 사례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이치의 그 절묘함은 예측할 수 없다고 한다.
선거기간 동안의 그 맹서를 더욱 갈고 닦아서 시민들의 마음을 얻고 이 사회의 부조리를 척결해 내는 지혜를 얻는다면,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재목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곽근홍(논설위원) young@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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